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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Dec 28. 2021

서른 즈음에, 나의 겨울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같다는 문장을  적이 있다. 한 해 동안 나는 무얼 했는지 회고하다 보면 이미 한 해는 지나고 새로운 나이를 맞이하게 되는 기이한 일주일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 괄호 속에서 나는 한동안 상념에 젖곤 하는데, 그때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대변해 주는 노래가 바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이다.

 

 서른 즈음인 나는 유독 이 공백의 시간이 겨울밤만큼이나 깊고 어둡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이십 대 때에는 나름 가능성도 있고, 기대도 품어가며 괄호 속에 느낌표를 채워갔는데, 서른 즈음에 나의 괄호 속에는 물음표만이 가득하다. 또 하루 멀어져 가는데, 나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를 곱씹다 보면, 별다르게 채워진 것 없이 하루하루 떠나보내는 나의 가난한 마음과 일상을 마주하게 되어 이내 씁쓸해지곤 한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깊게 내쉬면, 담배 연기를 닮은 입김이 하루처럼 멀어져 간다.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내 목소리로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김광석 씨의 목소리로 대신하며 비어진 마음을 달랜다.


 신기한 것은 상실감이 느껴지는 이 노래의 가사를 가만히 읊다 보면, 묘하게 위로가 되어 복잡해진 머리와 가슴이 어느 순간 담담해진다는 것이다. 이 나이 때쯤 느끼는 답답함이나 무미건조함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일종의 안도감일지도 모르는데, 이런 안도감이 불현듯 찾아오는 ‘서른 즈음엔 이래야만 해’라는 막연함과 조급함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평정심을 되찾고 나면 그저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그리고 묵묵히 해나간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내 자신을 돌보는 일. 이것이 내가 서른 즈음에 공백의 시간과 겨울을 나는 방식이다.


 서른 즈음인 내 공백의 시간은 겨울밤만큼이나 깊고 어두우며, 괄호 속은 물음표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막연함과 조급함이 또 내 마음을 어지럽힐지라도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대단하진 않아도 소소한 성취도 이뤄내고, 무미건조함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이 시기를 지낼 것이다. 그렇게 서른 즈음의 하루들을 보낸 후, 다시 돌아오는 이 공백의 시간을 마주 했을 때, 무얼 채우며 살았는지 물음표만 가득했던 내 괄호 속에 이런 것들을 채우며 살았구나 깨닫는 느낌표도 섞여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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