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어디세요?" 수화기 너머로 나를 찾는 업무자의 목소리. 막다른 복도 끝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서 대답했다. "아 제가 길을 잘못 들었네요. 4층이에요!" 보폭을 늘려 걸음속도를 올리고 다시 중앙 계단이 있는 쪽 복도 모퉁이를 지났다. 그녀가 서있었다.
상담이라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때보다 도덕성이 중요하다. 행여 불미스럽거나 문제가 될만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 내담자와의 관계는 기본이고 기본적인 업무 관계에 있어서도 사생활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특히 남자 상담자로 살아가면서 더욱 경계심을 갖는 편이다. 같이 상담업에 몸을 담고 있는 동료들, 또 상담을 하게 되는 각종 학교나 기관들, 상담에 오는 사람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환경적으로 대부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성별이 여자다. 외적으로 꾸미는 데에 관심이 있고 노력하는 편이다 보니, 때때로 뜻하지 않은 관심을 받을 때가 많다. 뭐 여기에 프로페셔널리즘, 전문성, 책임감 등등의 수식어구를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기준에 있어서 나는 제법 칼 같다. 그래서 여자는 많은데 '여자'로 보지 않으려 하고, 그러다 보니 '여자'를 만날 곳도 없다. 그날도 같은 날이었다. 이성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내담자 아동과의 만남을 위해 서두르는 발소리만 복도에 울리고 있었다.
그녀가 눈에 띄었다. 세로 스트라이프가 있는 회색 정장에 주황빛이 나는 갈색 머리, 피부는 유난히 하앴고, 계단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뒤돌아있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앞모습이 보였다. 크게 반짝이는 눈, 차분하면서 산뜻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 반듯하면서도 어딘가를 쿡 찌르듯 솟아있는 콧대, 부드럽게 분홍빛이 맴도는 입술.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함께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내담자 아동에 대해 설명해 주기 위해 복도에 나오라고 하는 손짓이 있었다. 좁은 복도, 상담실 앞 문에서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유난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녀를 마주 보고 서 있는 거리가 부담스러울 만큼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복도를 한 바퀴 돌아 헐레벌떡 걸음을 옮기며 가빠진 호흡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뛰었고, 도무지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의 중심에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보다 더욱 중압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시선을 견디면서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어후 죄송해요. 제가 좀 숨이 차 가지고... 잠시 외투 좀 내려놓고 오겠습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의 첫 만남이다.
올해, 아니 벌써 새 해지. 이미 내가 써 놓은 글만 보더라도 작년 초, 힘겹게 다시 마음에 여운을 주는 사람을 만나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너무나 손쉽게 뺄 수 있다고 믿었던 블록 하나에 공든 젠가 탑이 무너져 내리듯, 내 앞에서 밝게 빛나던 그녀는 어느새 어지럽혀진 나무조각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 통증과 허무함이 다시 불쑥 손을 흔들며 홀로 길을 나서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 뒤로는 누군가를 다시 떠올릴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아 고인 침을 속으로 꿀꺽꿀꺽 삼키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은 이미 발생한 고통을 길게 늘어뜨려 놓는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된다. 그래서 어제의 고통도 생생하게 오늘내일에 뻗쳐있다. 대신 위로가 되는 것은 그 무수한 시간 동안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포켓몬에 「웅크리기」라는 기술이 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기술은 시전 포켓몬의 방어력을 높인다. 주로 태초마을 풀숲을 돌아다니면 맞닥뜨리게 되는 번데기 포켓몬이 쓰는 기술이었다. 사랑이 찾아오고 떠나가는 과정이 그랬다. 그것은 나의 삶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한편으로 더 큰 성장과 변이를 위해 내가 웅크려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직 고치를 뚫고 나와, 섬세한 곡선을 그리며 날개를 팔랑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작년 초 상실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전과 다르게 때때로 내가 홀로여도 괜찮다는 사실이었다.
'자기심리학'으로 유명한 학자 Heinz Kohut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 곧 Self라고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상과 틀을 구성하기 위해 참조적인 자기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도 평생 말이다. 보통 애착이론에서는 생애 최초 대상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는데, Kohut이 독특한 점은 대상의 필요성은 전생애적이며, 애초에 내게 의미 있는 외부 대상을 Self의 구성요소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염기서열 반쪽,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반쪽이 또 하나의 사람, 또 하나의 사랑으로 맺어지듯,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사랑을 하는 존재들을 참조하여 빚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은 절대 혼자일 수 없고 홀로됨이 바람직하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홀로됨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랑에 목말라 '제발 나를 사랑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어요.'라고 울부짖는 듯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아찔하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은 어쩌면 나는 사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시인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나만의 모습, 나만이 사랑해 줄 수밖에 없는 개인의 영역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어색하지만 스스로에게 괜찮다며 다독이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함께 있기에 앞서 홀로 서기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연말은 보통 극단적이다. 외로움 아니면 낭만이 스며드는 순간들. 작년을 마무리하는 나에게는 쓸쓸함보다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홀로여도 괜찮을 이때, 지난 사랑의 모퉁이를 돌고 나니 낯선 아름다움이 서있다. 이게 사랑이 맞다면, 비좁은 내 마음의 서사에 운을 띄우게 된다면, 홀로여도 좋을 이때, 그 단단함 위에 놓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