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감자」를 읽고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작가 김동인의 단편집을 읽었습니다. 김동인은 1919년 동인지 『창조」창간에 참여해 첫 단편소설「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작가생활을 시작한 후, 한국문학계에 큰 영향을 남긴 작가입니다. 당시 문학계의 주류 흐름이었던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예술지상주의를 강조하며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대표작 「감자」를 비롯해 「광염 소나타」,「배따라기」등 다양한 단편소설들과 「운현궁의 봄」같은 장편소설, 그리고 여러 비평문들을 발표해 한국문학계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1939년 당시 일제가 침략한 만주에 문인 위문 사절로 다녀온 걸 시작으로 친일 행각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에 가입하고, 창씨개명을 해 '히가시 후미히토'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해방될 때까지 내선일체를 주장하고 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등 일제의 앞잡이로 선전선동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이 작품집은 위에서 언급한 「감자」등을 비롯해 총 12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약한 자의 슬픔」,「감자」처럼 전근대적 가부장제 하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 「배따라기」,「광염 소나타」, 「광화사」와 같이 예술과 현실 사이 모순과 갈등을 다룬 작품들, 「태형」,「배회」,「붉은 산」처럼 조선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들, 「발가락을 닮았다」,「김연실전」처럼 특정 인물상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들등, 언뜻 봐도 김동인은 굉장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막 한국문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함으로서 한국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김동인의 소설들은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물론 당시에 한국어로 소설을 창작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고, 그 탓에 아직 제대로 된 방법론을 성립하지 못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야겠지만, 그래도 지금와서 보면 부족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소설들이 문장이 지저분하고, 묘사는 빈약하며, 인물들도 전형적인 느낌을 줍니다. 또 이야기 전개 역시 극적인 장면에서 임팩트가 부족하고, 복선 없이 뜬금없는 결말을 맞이하는 소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비극적으로 끝나는데, 너무 비관적이고 계속 반복되다보니 읽을 수록 질린다는 감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아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는 김동인의 첫 작품「약한 자의 슬픔」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여학생 강 엘리자베트가 하숙하는 집의 주인 남작에게 강간당하고 임신해 하숙집에서 쫒겨나고, 시골로 내려가 고민을 거듭한 다음 남작에게 재판까지 걸지만 패소합니다. 돌아온 시골집에서 아기까지 유산해 좌절하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오촌모를 보며 사랑을 통해 시련을 이겨내는 강한 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내용입니다. 내용이 지금 봐도 상당히 충격적인데,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려 노력하는 강 엘리자베트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근대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근대인으로 거듭나는 강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통해 김동인이 추구한 가치를 잘 알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