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하루오의 「십계」를 읽고
유키 하루오는 2019년 제60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일본의 추리소설가입니다. 등장인물들이 고립된 장소에 갇힌 채 누가 범인인지 추리하는 장르인 클로즈드 서클로 유명한 작가인데요, 세 번째로 출간한 작품「방주」가 가장 유명합니다. 클로즈스 서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방주」는 출간된 해에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랭킹을 싹슬이 하며 한국에도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오늘 소개할 「십계」는 「방주」를 잇는 성서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네요.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은 아직 안 나왔습니다.)
죽은 큰아버지가 남긴 무인도를 시찰하기 위한 시찰단에 참가하게 된 주인공 리에와 그 일행은 도착한 당일, 작업장과 방갈로에 비축된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파가 닿는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할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신고하지 않은 채 그대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절벽 밑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오사나이가 화살을 맞은 채 발견되고, 현관 앞에는 범인이 남긴 열 가지 계율, 즉 '십계' 가 적힌 종이가 발견됩니다. 범인의 요구로 인해 시찰단은 사흘동안 꼼짝없이 무인도에 발이 묶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역자 후기에서 이 작품을 클로즈드 서클를 비튼 역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처럼 기존의 클로즈드 서클 작품들하고 차별화된 점이 보여집니다. 작품 속의 무인도는 완전히 고립된 장소가 아닙니다. 전파가 통해 전화나 문자를 보내 섬을 탈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범인은 계율을 내세우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알아내려 하지 말라고 협박합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섬 전체를 폭파시켜버리겠다고 말이죠. 그러다보니 추리소설의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누가,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작중 등장인물들은 던질 수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범인의 요구에 따를 뿐이죠.
전 이 작가의 전작인 「방주」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느낀 건 이 작가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소설 속의 배경, 인물, 대사, 전개가 전부 마지막 반전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요리사가 요리하기 전에 도구들을 늘어놓고 "이건 칼이고, 이건 국자고, 이건 주걱이고..." 라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느낌입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도 정해진 수순을 벗어나지 않는데, 가령 작업장에서 폭탄을 발견했을 때나 시체가 발견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반응이 하나같이 너무 담담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지' 라는 비관적이고 체념적인 태도를 보여줘요. 서로 다투거나 의심하는 묘사도 없고, 인물들의 성격도 전부 다 전형적이고...
그럼에도 띠지에 적힌 '미친 반전!' 이라는 문구를 믿고 끝까지 읽어나갔는데, 마지막 반전이 제 예상대로 밝혀져서 상당히 허탈했습니다. 처음에 반전을 제시하는 듯 하다가 한 번 더 꼬아 다시 한 번 진짜 범인을 드러내는데, 처음 반전은 예상은 못했지만 놀랍진 않았고, 진짜 반전은 제가 먼저 진범을 맞춰버리는 바람에 싱겁게 느껴졌습니다. 역자 후기에서 진범을 알고 다시 한번 읽어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데, 저는 읽으면서 진범의 대사나 행동이 위화감이 느껴져 '아, 얘가 범인이겠네' 라고 예측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고요. 그 덕에 반전의 충격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설정이 참신해서 기대했는데 꽤 실망했습니다. 작가가 좀만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