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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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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준비했어, 어린이날 선물 (1탄)

20수 고급면티야.. 

  어쩌다 어린이날을 이리 거창하게 준비하게 되었을까?


  4년 만에 학년부장을 맡아서 설레었던 걸까? 4학년 부장을 맡은 게 처음이라 그랬던 걸까?

어린이날 선물 같은 특별한 이벤트는 학년의 모든 반이 똑같이 통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에 매년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아쉬울 것도 없는 그런 안전한 선물을 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학년선생님들과 마음이 잘 맞고 아이디어도 척하면 척이라 준비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고 마치 빈틈없이 꼭 맞는 퍼즐을 맞추는듯한 느낌~^^


  어린이날 선물 1탄은 반티였다.

초등학교에서 반티는 보통 가슴에 커다랗게 1반! 2반! 새겨져 있는 것이 보편적이어서 현장체험학습일이나 체육대회처럼 "반티 입고 오세요~"하는 날만 아이들이 입고 오는 편이다. 물론 털털한 남학생들은 평상시에도 입고 오곤 했지만 학교행사 이외에는 절대 안 입는 아이들이 절반을 넘었다. 부족함이 없는 요즘 아이들이 반티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반 표시 대신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사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문구는 "행복한 꿈을 꾸는 우리!"

노란 초승달에 노란 "꿈"글씨가 동심 어린 표정과 어우러진다면 모든 아이들에게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업체와 직접 연락하여 단체 할인까지 받아 30수 면티보다 싼 가격에 20수 고급면티를 살 수 있는 행운까지 따라주었다. (이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자랑스러워서 아이들에게 20수 고급면티! 20수 고급면티!라고 여러 번 강조를 했을까..ㅋㅋ)


  학년에서 가장 젊은 우리 옆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어떤 색을 입고 싶은지 미리 물어보고 한참 동안의 협의과정을 거쳐 모두가 동의했다는 연두색으로 정했다. 나와 비슷하게 20년 내외 경력의 네 분 선생님은 묻지도 않고 아이들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무르팍도사의 자질을 가지셨기에 호불호가 없는 소라, 코발트, 남색, 검은색을 고르셨다. 가장 맏언니이자 인자한 선배 선생님은 누가 입어도 예쁜 순백의 흰색을 고르셨다. 

  학년부장이면서 똘끼 충만하고 아이들의 선호도보다는 바라보는 이의 흐뭇함을 최우선 가치로 꼽고 싶었던 나는 '핫핑크'로 정했다. 아이들에게 사전 안내 없이 고르기에는 매우 위험한 색이긴 했지만 내가 두 달 동안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현란한 말솜씨라면 아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정말?)

  아이들이 평소 입는 티셔츠 사이즈를 조사하면서 무심한 듯 "우리반 반티 색깔은 핫핑크야"라는 말을 농구공 던지듯 툭 던졌는데 의리남 몇 명이 "앗싸! 남자는 핫핑크지!"라고 통통통 드리블해 주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무채색의 옷을 선호하기 시작한 여학생 몇 명의 얼굴에서 흠칫 놀라는 표정을 보았으나 그녀들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기 전에 선수를 쳐야 했다.

  "얘들아! 이제 너희의 귀여움을 뽐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너네가 핫핑크를 입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생각하니 선생님 기분이 막 좋아지더라. 5월 연휴기간에 어버이날을 앞뒀으니 분명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갈거야. 그때 이 핫핑크 티셔츠를 입고 가서 최선을 다해 애교를 부려봐.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쯤 되면 온몸이 다 아프신데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나고 기운이 펄펄 나실걸~" 나 조차도 놀란 매우 빠른 스피드로 착한 아이들의 효심을 자극하는 멘트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건 진짜 순도 100% 나의 진심이다.)

5학년이라면 이런 멘트에도 반기를 드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4학년은 아직 성품이 부드럽고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고 무엇보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크다. 그러므로 우려스러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5월 2일, 서랍장에서 육중한 핫핑크 덩어리를 꺼내 한 장씩 나눠주며 던진 나의 마지막 쐐기골!

"내일 어린이날 선물 2탄으로 학년체육대회 하니까 모두들 반티 입고 오세요~"

몇 명의 남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얘들아~ 내일 반티 안 입고 오는 애들이 있을까?"


(2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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