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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20. 2024

오늘 : 여행자의 마음으로

2024. 3. 20.

1.

어제는 퇴근 후에 집 주변에 높게 자란 풀과 나무들을 제거했다. 톱으로 제거해야 할 만큼  웃자랐다. 날이 따뜻해지면 초목 사이로 벌레가 들끓기 시작하니, 그전에 전지작업, 풀 제거작업을 마쳐야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음먹고 작업을 했다. 집 주변이 깨끗해졌다.

그런데 안경이 안 보인다. 분명히 작업하다가 벗은 것도 같고, 집안에서 벗어놓고 것도 같은데,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벗어놨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안경이 없어지니 온 세상이 흐릿하다. 분명히 집에까지는 끼고 왔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샅샅이 뒤졌지만 찾는데 실패했다. 할 수 없이 컴퓨터 작업용 비상안경을 챙긴다. (명호형이 선물한 안경테에 알만 맞춘 안경이다.)  내일은 이 안경을 끼고 근무를 해야겠구나. 발권은 제대로 해줘야 하니.

2.

오후에 풍랑주의보가 뜰지 몰라 운항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는데, 운진항 선사에서 2시 50분을 막배로 한다는 통보가 욌다. 가파도 터미널을 정리하고 3시에 퇴근했다. 바람이 차갑고 파도가 높아진다. 집에 도착해서 고양이 밥을 주고, 김치찌개를 끓여 내 밥을 챙겨 먹는다. 밥 먹고 그냥 집에서 쉴까 하다가 해도 길어졌으니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한다. 마치 여행자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해가 지는 해안가를 돌다가 풍찻길로 들어선다. 길 주변으로 청보리가 쑥쑥 자라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설치된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로 올라가 가파도 주변을 천천히 구경한다.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내려오는데,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포도존으로 설치한 작품도 보이고, 이전에 보지 못한 돌하르방도 보인다. 어떤 하르방은 아예 손을 높이 들어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다. (귀엽긴 한데 과하다.)

선사에서 쉼터도 새로 마련했는데, 분홍빛 지프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젊은이들을 위한 포토존으로 설치한 것이다. (우리집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신박하다며 좋아한다.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려나?)  나는 이런 인위적인 설치물보다는 자연스러운 풍광을 좋아하는 편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아무래도 튀기 마련이다. 나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들을 잘 다듬었으면 좋겠다. 관광객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파도를 찾아오는 것은 가파도다운 것들을 구경하려 오는 것이다. 그 가파도다움을 잘 찾아서 지켜가야겠다.

3.

개발이냐 보존이냐, 편리냐 자연스러움이냐, 이익이냐 생존이냐, 관광객이냐 원주민이냐, 이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극단적일 것이다. 현실은 중간 어디쯤에서 타협하고 절충한 것이리라.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 그럼에도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보존, 자연스러움, 생존, 원주민  편을 들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가더라도 그 가치를 높이 사는 곳을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반대로 가고 있어 조금은 걱정이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지만 지는 해를 찍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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