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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23. 2024

오늘 : 외박할 결심

2024. 3. 22.

1.

금요일, 쉬는 날이다. 첫배를 보내고 교대근무자에게 매표소를 맡기고 10시에 줌수업하러 자전거를 낑낑 타고 바람을 거슬러 집에 도착한다. 집에 와서 고양이 상태를 점검하고, 공부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잠시 나와 한숨 돌린다. 수업시간은 언제나 반갑고 들뜬다. 단순노동에서 벗어나 지식노동을 하는 시간. 오래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즐거움.

2.

후에 풍랑주의보가 떨어져 나가면 가파도로 돌아올 수 없다. 게다가 내일 날씨도 불안하다. 자칫하면 이틀을 밖에서 지내야 한다. 집 나가면 비용이요, 고생이지만 오랜만에 외박할 결심을 한다. 안경도 맞춰야 하고 보급투쟁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모슬포 재래시장 근처에서 먹는 감자수제비가 그립다.

2시 20분 배를 타고 가파도에서 나와 모슬포에 위치한 다빈치 안경점으로 직행한다. 가게를 들어가니 30년 동안 안경을 만들었다는 베테랑 안경사가 신뢰가 간다. 시력검사하고 준비해 간 안경테에 알을 맞추는데 30분도 채 안 걸렸다. 비용은 5만 원. 예상 액수의 반값이다. 만족!

3.

새로 단장한 온누리빵집 -  모슬포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 에 들러 빵을 종류별로 샀다. 가파도 지인들과 나눠먹으려면 한 두 개로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단골집인 바람수제비집에 들러 감자수제비를 시킨다. 늦은 점심식사를 든든히 했다.

이제 숙소로 가자!

가파도민에게 현금 3만 원에 방을 내주는 모슬포호텔. 여기도 단골이다. 카운터에 들어가니 먼저 아는 체를 해준다. 방으로 들어가 무거운 짐을 벗고, 무거운 옷도 벗고, 알몸으로 샤워장으로 들어간다.

얼마 만에 하는 따뜻한 물 샤워인가? 오래도록 물을 틀어놓고 따뜻한 물을 즐긴다. 샴푸질도 두 번, 비누칠도 두 번. 못다 한 샤워를 실컷 한다.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이 맛에 외박할 결심을 하는 거다.  외풍 없는 따뜻한 방에서, 식지 않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즐거움. 나이 들어 아파트에 살면잊었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4.

외박 나오길 잘했다.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재충전.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난 책도 읽고, 넷플릭스 영화도 한 편 보고, 편안히 침대에서 단잠을 자자. 수고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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