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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5. 2024

2024 칼럼쓰기 5 : 가파도에 도서관이?

<고양신문> (인터넷판, 2024. 6. 14일자)

관광객에게 가파도는 평온하고 편안한 섬입니다. 가파도로 들어와 천천히 걷다보면 마음이 착 가라앉아 참으로 좋은 쉼터임을 알게 됩니다. 마음만 바쁘지 않다면, 하루쯤 머물다가 가고 싶은 섬입니다. 그래서 나도 가파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음에 올때는 꼭 일박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해질녘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고, 해뜰녘의 하늘은 신비합니다. 일몰과 일출을 보다보면 자연에 왜 큰 대(大)자를 붙여 대자연이라 말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주민에게 가파도는 불편함이 많은 섬입니다. 자연은 풍성하지만 생활문화는 부족합니다. 편의점도, 약국도, 철물점도, 음식점도 없습니다. 관광객이 빠져나가면, 마치 사람이 없는 곳 같습니다. 주민들은 아프면 밖으로 나가고, 물건을 사러 밖으로 나가고, 일을 보러 밖에 나갑니다. 가파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아, 가파도에는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없습니다. 섬 바깥으로 나가면 대정읍에 송악도서관이 있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배 타고 버스 타고 걸어서 가야합니다. 섬 바깥에 자가용이 있다면 편하겠지만 뚜벅이들에게는 참으로 이용하기 불편합니다.


고양시에서 자유청소년도서관을 10년 넘게 하다가 문을 닫고, 가파도로 내려와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도서관이었습니다. 뭐눈에 뭐만 보인다고, 책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이 책이 없자 제일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가파도에 와서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을 차릴 만한 공적 장소도 없고, 개인의 부담으로 세를 내고 작은 도서관을 차릴만한 경제적 여유도 아직은 없습니다. 나중에 돈이 좀 모이면, 꼭 좋은 자리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가파도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멋진 호사가 아닐까 싶네요.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고 도서관 이름도 지어놨습니다. 가파도 고양이 도서관. 고양이들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 생각합니다.


그건 그거고. 매표소에 근무하다 보니 배를 기다리는 시간에 그림책이나 간단히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전 직원의 아이들이 읽었던 초등학생용 그림책과 교양도서를 20여 권 갖춰놓고는 있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송악도서관에 갈 때마다 가파도에 책을 좀 기증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드디어 책을 받았습니다. 팔십여 권에 가까운 책을 배에 싣고 매표소로 옮겨놓았더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매표소에 작은 도서관을 꾸린다고 하니 출판사에 다녔던 지인이 좋은 책 두 박스를 보내줬습니다. 다른 지인도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네요. 혹시 좋은 그림책이나 매표소에서 읽으면 좋을 책을 보내주실 수 있나요? 관광객뿐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노인들도 그림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이 모이면 책장과 탁자를 마련하여 읽고 싶도록 잘 전시해두면 매표소에도 작은 도서관이 생기는 걸까요? 쿠팡에 책장을 시켰는데 섬이라 책장이 배달되지 않는다는 답신을 받았습니다. 조립식으로 시켜도 택배가 되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긴 하네요. 섬에 사는 학부모 중에 기증할 책장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 작은 일 하나에도 이리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립니다만, 그래도 관광객과 주민들이 매표소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혹시나 싶어 주소를 남깁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로 246 가파도 터미널 매표원 김경윤입니다.


가파도에 도서관이?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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