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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ug 15. 2024

책 : 신비 섬 제주 유산

2024. 8. 15.

제주는 단순히 지역 이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콘텐츠다. 제주 올레, 삼다수, 해녀, 한라산과 오름, 용암 동굴, 습지와 곶자왈, 제주어, 제주 신화... 무궁무진한 인문학 가치를 가진 보물섬이 제주다. 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처럼 제주는 알면 알수록 그 가치가 더 크게 보이고 더 아름다운 섬이다. 한반도 본토와 다른 역사, 문화, 자연을 가졌고 심지어 제주의 동서남북도 다른 역사, 문화, 자연을 가졌다. 그런 차이가 제주의 가치를 만들어 냈다. 제주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과 제주 사람이 아니었을 때 보이는 것들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된 것은 반서반제인(반은 서울, 반은 제주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행운이었다.

이제 제주는 '관광'하기보다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낯선 이와 낯선 풍경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관광보다 제주의 가치를 느낌으로써 삶과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자연에게 치유받는 여행이 가능한 곳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주에서 한국의 원형, 원초적 지구에 대한 인문학 탐구를 통해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시사철 모든 게 다 좋은 제주이지만, 이 좋은 곳을 시간과 공간으로 나눠서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입체성이 구현된 제주를 만나 볼 수 있다. 내가 열두 달 52주에 걸쳐 제주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주로 들어가는 입문서로서 이 책이 기능할 수만 있다면 제주 출신의 글꾼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6~7쪽)

- <시작하며>에서


1.

1년을 계약하고 제주도의 부속도서 가파도로 내려와 살고 있지만, 워낙 유배살이처럼 한 곳에만 살고 있어 제주도에 대한 호기심은 더해 가기만 한다.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도 제주도를 모르고 있다는 이 간극을 메우려면 직접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아봐야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독서다. 이번에 송악도서관에 갔을 때 <신비 섬 제주 유산 : 아는 만큼 보이는 제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50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을 틈틈이 읽어도 다 못 읽어서 재대출을 해서 이제야 다 읽었다. (내 인생에 재대출이라니?)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슈퍼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있다면, 제주도를 소개하는 책으로 나는 일단 이 책을 꼽기로 했다. 그만큼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지은이 고진숙 씨는 청소년책을 주로 썼는데, 이번에 그 실력을 이 책을 통하여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글은 쉽고, 친절하고, 자세하고, 깊고, 바르다. 얼치기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여 부피를 늘린 것이 아니라,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를 사랑한 작가의 애정이 글마다 뚝뚝 흘러 넘친다. 게다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참고한 자료들이 뒤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목차도 알차고 방대하다. 그리하여 나는 지인들에게 제주를 알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장할 만한 교과서 하나를 마련한 셈이다.


2.

재대출을 하여 다 읽었지만, 구매를 결정했다. 이 책은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라, 간직하며 보고 또 보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제처럼 제주의 역사, 문화, 자연에 대하여 입체적으로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매월 글이 끝날 때마다 관련 지도를 첨부하여 어느 곳을 방문하면 좋을지 가이드북의 역할도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일 년쯤 차 한 대 빌려서 이 책을 들고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체험하고픈 마음이다.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나이가 먹을수록 몸이 굼떠지는 데, 독서인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책 몇 권 읽고 아는 척하는 인생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발로 직접 걸으며, 손으로 직접 만지고, 입을 직접 찍어 먹으며,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그래서 내 세포에 그 체험을 기록하고 싶다. 종이에 기록하는 것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몸에 기록하고픈 것이 나만의 소망일까.


3.

고진숙 작가 덕분에 제주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경험하고픈 마음이 부쩍 싹트기 시작했다. 이 작은 섬 가파도를 알기 위해 8개월 넘게 살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뿐인데, 서울의 세 배 크기의 제주도를 알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제주도를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아, 책 한 권이 내 건강마저 걱정하게 하다니. 어쨌든 정말 좋은 책이다.


매 편 놀라움을 선사했지만,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매일 보는 종처럼 생긴 산방산에 관해서 저자가 소개할 때였다. 아, 덩치가 작다고 얕봤는데 큰코다쳤다. 일부만 인용한다.


오름 중의 최고는 따로 있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위에 있었다는 전설을 가진 오름인 산방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제주섬을 다 만든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이 너무 뾰족하다고 산의 윗부분을 뽑아 던졌다고 한다. 뽑혀 날아가 만들어진 오름이 바로 산방산이다. 신기하게도 갖다 붙이면 똑떨어질 정도로 크기가 비슷한 데다 백록담에서 마지막에 분출한 용암과 같은 조면암으로 이뤄졌다. 모양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하고 심지어 돌도 같은 조면암이라니.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전설이 생긴 것이리라.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실제로는 백록담보다 훨씬 전에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오름 중 하나이다. 나이가 무려 80만 살이나 된다. (310쪽)

가운데 있는 종처럼 생긴 산이 산방산이다. 그 앞에 낮게 누운 산이 송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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