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안 쓴 지 열흘이 지났다. 독서를 멈춘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에 풍랑으로 배가 수 차례 끊겼고, 가파도에서 쓴 신간 <장자를 거닐다>가 출간되었고, 잠시 고양시 집에 다녀갔다 왔다. 돌아와서도 여전히 무더위는 지속되었고, 여름 내내 버티던 체력은 바닥이 났다. 그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나마 가와이 하야오의 저작을 읽으며 이 시기를 지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동화와 민담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되었고, 융의 심리학의 실제적인 맛을 보았다. 이제 그 기록을 조금이나마 남긴다.
1.
내가 가와이 하야오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나카자와 신이치와 대답집에 질문자로 등장하고 나서다. 나카자와 신이치에 대해 말하자면, 그가 쓴 <카이에 소바주(야생적 사고)> 연작 5권을 읽으며 펜이 되었다. 인류학 5부작이라 할만한 대작인데, 읽으면서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목만 소개하면, 1권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권 <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3권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4권 <신의 발명 - 인류의 지와 종교의 기원>, 그리고 최종작이자 하이라이트인 5권 <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되는 대안적 지성>이다.
그가 융의 대가 가와이 하야오 선생과 만나 대담하고 엮은 것이 <불교가 좋다>이고, 나는 이미 이 책을 2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또 좋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새로 느낀 것이 대담자인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관심이 나카자와 신이치에서 가와이 하야오로 옮겨갔다는 것.
2.
특히 가와이 하야오가 쓴 <인간의 영혼은 고양이를 닮았다>는 이번에 공동작업을 하기로 한 고양이 소설의 기초 공부자료로 더없이 좋았다. 이 책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소설과 민담을 소개하되, 분석심리학자답게 인간의 심층심리와 연결 지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전체가 12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호프만 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으로 시작하여 이미 여러 가지 매체로 소개된 <장화 신은 고양이>, 르 귄의 <날고양이들>, 일본의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 나베시마 고양이 소동에 나오는 고양이, 100만 번 산 고양이, 폴 갈리코의 소설에 나오는 고양이 등 다양한 고양이들이 소개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설은 구매로 이어졌다. 읽지도 못하고 사기만 한다.)
왜, 하필 고양이인가? 고양이 그 자체를 탐구하기 위하기보다는 복잡하고 기묘한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기 위한 매개로 고양이가 등장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고양이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지만, 낯선 나의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현대사회에 '영혼'이라니.) 그리고 과학적(물리생리학적) 접근과는 다른 심층심리학적 접근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배웠다.
가와이는 융의 제자인 바바라 한나가 소개한 고양이 만다라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양이의 다양한 측면이 인간의 영혼을 닮아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전개되는 이야기는 모두 이 다양한 고양이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인간의 영혼은 고양이를 닮았다>였던 것.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가 사냥하는 모습을 잔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고양이 입장에서는 그저 고양이로서 본분을 다할 뿐 문제 될 게 없다. 물론 고양이 특유의 성격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고양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인간은 본인의 성격을 그대로 고양이에 투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옛날부터 인간이 그려온 고양이의 수많은 이미지에는 인간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소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26쪽)
3.
고양이의 이야기를 넘어 다양한 민담(특히 그림 동화)의 사례를 통해 인간 심층심리를 소개한 책이 <민담의 심층>이다.
가와이는 민담이 인간의 인격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민담이 인간 마음의 구조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여기고, 민담을 통해 융의 심리학의 핵심 용어들을 설명한다. 전율, 독립, 소망충족, 창조적 퇴행, 그림자, 트릭스터, 자아와 자기, 수수께끼,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실현(개성화 과정) 등 융의 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한 사례로 그림 동화가 등장하자, 그 어렵다는 심리학이 한결 친근하게 다가오는 효과를 낳는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러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전 세계의 민담과 신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중시했다. 그리고 심리치료에 전념하는 동안 환자가 꾸는 꿈이나 망상 따위의 내용에도 그러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무의식을 개인적 무의식과 보편적 무의식으로 나누어 생각하자고 제창했다. 즉, 인간의 무의식의 심층은 인류에게 공통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모든 인류는 공통적으로 무의식 속에 이러한 초능력을 갖춘 아이의 표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거기에 하나의 원형적인 archetype 존재를 가정한 것이다."(20~21)
융의 심리학이 어렵다면, 이 책을 처음 읽는 책으로 권한다.
4.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말랑말랑한 인생상담책 <왈칵 마음이 쏟아지는 날>이다. 이 책은 <마이니치 신문>의 정보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인데, 일본인의 상태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공통점뿐 아니라 차이점도 많은데, 사실 일본인의 고민을 직접 들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막연한 상상에 기대어 일본인의 모습을 그려왔다. 그런데 이 인생상담 서적을 읽으며 일본인들은 이런 것들을 인생에서 고민하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 책이 도움이 되었나? 의외로 많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주욱 회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힘든 일들을 내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떠올랐고, 그럭저럭 잘 나를 보살피며 살았다는 위로를 얻었다. (이 책이 좋았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각 장을 시작할 때 인용한 융의 문구만을 소개한다. 천천히 음미해 보시길.
"우리의 마음은 자연의 일부, 끝없는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영혼의 안정이나 행복, 만족 같은 삶의 의미는 오로지 개인에 의해서만 경험된다."
"사람은 좋거나 나쁜 성향을 모두 품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삶 자체를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만약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보다 먼저 성인인 우리 내면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자각하지 못한 의식은 연꽃처럼 마음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자라나 어느새 마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뤄나간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해 버린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