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문학과지성사, 2025)
2020년 9월과 10월에 집중적으로 이 소설의 2부를 쓰면서, 집이 떠나가도록 크게 음악을 틀어놓을 때가 있었다. 김광석의 기타 하나, 하모니카 한 대와 함께 콘서트에서 부른 <나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가사 속 한 문장이 언제나 마음을 흔들었다.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음악을 들으며, 내가 김연아라고 생각하면서 스파이럴 동작을 흉내 내기도 했다. 온몸을 써서 춤도 췄다.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쓴다...... 쓴다.
울면서 쓴다.
흐름을 끊기 싫어 부엌에 선 채로 요기를 했다.
화장실에 뛰어갔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온 힘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53~54쪽)
1.
쉬는 날, 모슬포로 건너가서 동네책방 어나더페이지에 들러 책을 몇 권 샀다. 그중 한 권이 한강 산문집 <빛과 실>이다. 한강의 책은 벌건 대낮에 읽는 것보다 어둑한 밤에 읽어야 한다. 낮에는 철학책을, 밤에는 한강 산문을 읽었다.
책에는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록과 수상 소감이 실려 있었다. (이 두 글은 이미 인터넷 지면을 통해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읽는다.) 그 외에도 수상 후의 일상과 작품 구상에 대하여, 한강이 3년 전에 구입한 집에 딸린 북향정원에 심어놓은 식물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강의 일상과 내면 풍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산문과 일기문을 읽는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한강의 삶과 나의 삶을. 한강의 작풍과 나의 작풍을, 한강의 상상력과 나의 상상력을.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한강과 나의 거리가 멀어진다. 극과 극을 향해 달리는 배처럼, N극과 S극처럼. 겹치는 것이 거의 없다. 괜찮다. 한강은 한강의 글을 쓰는 것이고, 나는 나의 글을 쓰는 것이니까.
2.
한강은 작품을 쓰기 위해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작중 인물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끼며,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어렵게 대신한다. 작중 인물이 겪는 추위를 겪기 위해 눈을 맞으며 산속을 헤맨다. 바람을 맞으며 언덕에 오른다. 시각과 청각보다 고통을 직접 느끼는 촉각을 자극한다. 그래서 한강의 글을 읽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서 눈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을씨년스러워지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한다. 한강의 글에는 피냄새가 난다. 나는 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여러 차례 책을 읽다 덮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펼쳐 들고 읽는다. 겨우겨우 끝에 도달한다.
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작품 밖으로 나온다. 내가 내 글을 읽으며 내 글을 평가한다.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쓰고 나서 후회한다. 가끔 끝까지 쓴 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겨우 온 끝이다. 다시는 달리고 싶지 않은 길. 시간이 얼마 흐른 후 다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시지프스의 돌 굴리기와 같은 반복운동을 계속한다. 나는 내 속으로 빠져들어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내속에서 나와 글을 쓴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밖에서 안을 찌르는 형국이다.
3.
그래서 나는 글쓰기의 보상으로 책 읽기를 한다. 책 읽기는 글쓰기보다 훨씬 편안하다. 남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주는 거리감이 일종의 안정장치인가 보다. 아무리 힘든 글을 읽어도 글쓰기보다 편안하다. 한강의 산문집을 읽으며 편안함을 느낀다. 한강의 글이 따뜻해진 건가?
"12월 18일
내 작은 집의 풍경에는 바깥세상이 없다. 풍경이 주는 평화. 내면의 풍경 같은 마당.
행인도 거리도 우연의 순간도 없다.
그걸 잊지 않으려면 자주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내향적인 집에도 외부로 열려 있는 방향이 있다. 마당의 하늘. 그,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오래 보고 있었다." (144쪽)
"11월 2일
남향 집은 겨울에 빛 항아리가 된다."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