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
1.
6월이 밝았습니다. 지난 12월 3일부터 기나긴 겨울이었습니다.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절. 어둠을 지속하려는 세력과 아침을 맞이하려는 세력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포와 우울, 불안과 조바심으로 긴긴밤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꽃이 피고 꽃이 졌습니다. 보리가 파랗게 고개를 들었다가 노랗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려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낮은 여름 기운이 완연합니다. 흐트러진 일상을 정돈하는 시간입니다. 카오스의 원심력을 코스모스의 구심력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절입니다.
2.
지난주 목요일 새벽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사전투표를 완료했습니다. 5월의 마무리는 사전투표로 하고 싶었습니다. 제주도에서 하는 고전강좌도 끝났고, 대정중학교 학교 특강도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마무리할 것을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할 것들을 챙겨야 합니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고양이 밥을 챙겼습니다. 잔뜩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소분하여 냉장고에 넣고, 아침 먹을 분량을 그릇에 담아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 세끼 제때 챙겨 먹는 일이 만사의 시작입니다. 설거지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출근을 합니다. 걸어서 10분, 해안가를 천천히 걷습니다. 매표소에 도착하여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틉니다. 발권기를 체크하고 자전거방 삼촌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루의 시작입니다.
3.
일요일 아침 첫배와 둘째 배는 만선입니다. 주말이라 관광객이 아직 많습니다. 하지만 단체관광이 많아 매표소는 한가합니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는 이유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의 생을 반추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관적 기억과 객관적 사실을 섞어 써놓은 유시민의 책을 읽으며 나도 나의 생애를 되돌아봅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 장년시절과 중년시절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떠오릅니다. 유시민이 태어나고 5년 후에 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많은 부분 겹칩니다. 개인사는 하나도 겹치지 않지만(^^). 서울의 도시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힘겹게 마치고,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 졸업기한을 꽉 채우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감옥 가고, 학원 다니고, 도서관 차리고 책 쓰고, 강의 다니고, 코로나 맞고, 도서관을 정리하고 우울에 빠지고, 가파도로 내려오던 시간들이 주마간산 격으로 머리를 달립니다.
4.
그래요. 6월 달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쓸 계획입니다. 가파도로 내려오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 생기네요. 그 시간을 맘껏 써보려고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떠나는 계절이지만, 나는 내 마음에 닻을 내리고 조용히 흔들리겠습니다. 다음 배가 들어오네요.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