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8.
1.
"선생님! 책은 오늘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보니 세계 고양이의 날에 인쇄하게 되었네요!^^"
사계절에서 내 책을 담당한 장윤호씨에게서 카톡이 왔어요. 8월 8일이 세계 고양이의 날입니다. 고양이가 8번 산다고 해서 8월 8일을 고양이의 날로 정해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인쇄되고 있는 책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습니다. (책의 주인공 중 고양이 몫이 큽니다.^^)
2.
그래요. 광복절인 8월 15일 전후해서 청소년소설 <노자, 가파도에 가다>가 출간됩니다. 가파도에 있으니 번듯한 출간기념회도 못할 듯 하지만, 어쨌든 2년여 살면서 소설 한 권 썼습니다. 축하해 주시렵니까? 글이 너무 짧아, 책의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첨부합니다.
3.
<작가의 말>
1.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마음을 바로잡고, 용기를 몸을 바로 잡습니다. 그저 먹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면,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혜와 용기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학교에 다니는 학창시절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필요한 덕목입니다.
나는 오늘도 지혜와 용기를 바랍니다. 지혜를 얻는데 독서만 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인류에게 검증받은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견디고 살아남은 책을 ‘고전’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지혜가 담긴 책’이지요. 오래되었다고 낡은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장인이 만든 작품은 오래되면 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로워지는 것이 고전입니다.
평생에 걸쳐 많은 고전을 읽고 지혜를 얻으려 했으나, 모든 책에서 같은 양의 지혜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책은 어려워서, 어떤 책은 지루해서, 어떤 책은 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읽다가 놓아버렸거나 설렁설렁 읽고 책꽂이에 꽂힌 채 먼지가 쌓여가기도 했습니다. 책에도 인연이 있나 봅니다. 나와 인연이 있는 책을 소중히 생각하며 여러 차례 읽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2.
그렇게 인연을 맺은 책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노자 『도덕경』입니다. 이 고전은 읽고 또 읽고, 수십 번을 고쳐 읽었습니다.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공자는 말했는데, 『도덕경』은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덕경』을 이용하여 공부론을 쓰기도 했고, 창작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소설을 썼네요.
이번에 쓴 『노자, 가파도에 가다』를 쓰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저의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거든요. 여러분도 겪으셨겠지만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펜데믹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녀서, 코로나 펜데믹 기간 동안 10년 넘게 운영했던 도서관을 접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책을 써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고립감과 좌절감으로 힘들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여차여차해서 제주도에서도 가파도까지 흘러 내려왔습니다. 많은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거의 맨몸으로 가파도로 내려와서 매표원으로 취직하고, 작은 집을 얻어 고양이들과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습니다. 혼자 지내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책도 다시 읽고, 글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과 바람, 바다와 파도와 바위와 꽃과 풀, 갈매기와 제비와 참새와 고양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집들과 돌과 물건들이 나를 위로했습니다.
애써 살지 않아도, 부유하게 살지 않아도, 천천히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도 된다고 소리 없이 말해 주었습니다. 노자가 쓴 책을 읽으며 노자의 마음과 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여, 글 쓰는 몸을 만들었습니다. 훈련입니다. 그 글 쓰는 몸으로 이제 『노자, 가파도로 가다』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3.
서양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류에게 위대한 지혜를 남긴 4대 성인으로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그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지혜를 구했습니다. 공자는 노자에게 직접 배우지 못했지만, 스승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니 노자는 지혜로운 사람 중에 지혜로운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노자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고작 5천여 자 되는 한자였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쪼개고 나눠서 81편의 시로 엮은 것이 『도덕경』입니다.
2500년이 더 지난 이 짧은 글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는 것이 차라리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시대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지금도 다시 읽히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내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이 글을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인연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놀랍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 『도덕경』을 읽으며 쓴 소설 『노자, 가파도에 가다』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노자가 등장합니다. 한 명은 화자인 노자이고, 다른 한 명은 『도덕경』 속의 노자입니다. 둘은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인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도 사는 사람과 현재는 죽은 사람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렇게 만납니다.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지혜를 구하고,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립니다. 독서는 바로 그런 기적을 만드는 마법 같은 행위입니다.
4.
이 소설은 내가 쓴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의 후속작이기도 합니다. 이미 8년 전에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를 출간하며, 언젠가 노자에 대한 소설을 쓰리라 다짐했는데, 이제야 그 다짐이 현실이 되었네요. 오랜 시간 기다려준 사계절 출판사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다듬어주고 멋진 충고를 해주었던 이창연, 장윤호 편집자께 감사드립니다. 멋진 그림을 그려주신 윤여준 작가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덕분에 책이 더욱 멋져졌습니다.
이 책을 나와 인연을 맺고 어려운 시절 나를 보살펴주었던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았다고, 앞으로도 잘살아 보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도와 가파도에서 인연을 새로 맺은 모든 만물 중생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여러분이 나입니다. 내가 여러분입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빛나는 나날입니다.
2025.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가파도에서
<작가 소개>
책 읽고 책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40년, 고양에서 아이들과 함께 20년, 가파도에서 고양이와 함께 3년째 삽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팔고, 매표소 안에 ‘가파도 고양이 도서관’을 작게 차려놓았습니다.
청소년이 읽으라고 쓴 소설은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 『스피노자, 퍼즐을 맞추다』, 『묵자 양주, 로봇이 되다』, 『허균, 서울대 가다』, 『예수, 신의 아들이 되다』, 『소크라테스는 왜 우리 집 벨을 눌렀을까?』, 『장자에게 잘 놀고 먹는 법을 배우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