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아무런 소득도 없는 깨달음을, 앎도 얻음도 없는 깨달음을 왜 의지하는가?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가 되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었다하는 소승불교의 주체 아라한을 뛰어넘는 대승불교의 새로운 주체인 보디사트바! 그는 이제 마음이 걸림이 없고, 공포가 없고, 뒤집힌 몽상도 없다. 이념도 없고 삶이 있을 뿐이다. 열반에 든 삶.
1.
이와 공명하는 디오게네스 이야기 한 대목. 아테네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가 그의 무리와 함께 아테네 광장의 계단 아래 누워있는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마주쳤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
”나는 알렉산더다. 너는 누구나?“
”나는 개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당신은 좋은 왕인가, 나쁜 왕인가?“
”나는 좋은 왕이다.“
”내가 왜 좋은 사람을 무서워해야 하는가?“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마. 말하라.“
”내 앞에서 비켜라. 햇빛 가리지 말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에게 줄 것은 없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협박도 별무소용이다. 고작 왕 따위가 신처럼 살고자 하는 거지철학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권력도, 무력도, 재력도 그에 앞에서는 위력을 행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마음에 걸림이 많았던 알렉산더에 비해 아무것도 갖지 못한 디오게네스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2.
자유로운 인간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도 생각난다. 조르바의 이야기 :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 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소설 속 조르바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현재에 대한 전도망상(顚倒妄想)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된다. 디오게네스의 정신은 조르바를 이어 카잔차키스에게 전해진다. 훗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묘비명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구(究)는 ‘궁극적으로’라는 부사이다. 경(竟)은 ‘도달한다’는 동사다. 욕망의 불길이 꺼진 열반(涅槃,nirvana)에 도달한다. 그것이 시간 속에서 존재했던 모든 부처님이 도달한 경지이다. 그들도 이러한 지혜를 얻어 최상의 깨달음[阿辱多羅三邈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 無上正等正覺]을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