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잘될 터이었다. 다만 한 가지가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 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돌아서서 마스트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 친 그는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은 거기 있다.
자기가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넉넉한 뱃길에 여태껏 알아보지 못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무엇에 씌었던 게 틀림없다. 큰일 날 뻔했다. 큰 새 작은 새는 좋아서 미칠 듯이, 물속에 가라앉을 듯, 탁 스치고 지나가는가 하면, 되돌아오면서, 그렇다고 한다. 무덤을 이기고 온, 못 잊을 고운 각시들이, 손짓해 부른다. 내 딸아,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옛날, 어느 벌판에서 겪은 신내림이, 문득 떠오른다. 그러자, 언젠가 전에, 이렇게 이 배를 타고 가다가, 그 벌판을 지금까지 떠올린 일이, 그리고 딸을 부르던 일이, 이렇게 마음이 놓이던 일이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208~209쪽)
1936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최인훈은 그곳에서 1945년 해방을 맞이한다. 북한이 공산화되자 부르주아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핍박을 피해 1947년 함경남도 원산시로 이주하면서 최인훈은 원산중학교에 2학년으로 월반하여 공부한다. 그곳에서 원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철수하는 국군을 따라 월남하여 친척이 있는 전라남도 목포로 이주한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지만, 문학공부에 몰두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7년 장교로 임관하여 군복무를 했다. 통역장교로 7년간 근무한다. 서울대학교는 중퇴한 상태였다. 군대생활 중에 그는 소설을 쓴다. 1959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나,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작품은 다음 해인 1960년에 발표한 <광장>이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사랑의 재확인>이라는 평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치사적인 측면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그것(<광장>)은 지적으로 충분히 세련된 문체로,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 후에 읽게 된 <가면고> <구운몽> 《회색인》 등은 그를 전후 최대 작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960년 4월 19일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이 와중에 186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다. 항쟁이 격화되자 4월 26일 이승만이 하야를 발표하면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의 몰락하였다. 6월 15일에는 개헌을 통하여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윤보선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당시 작가 최인훈의 나이는 26살이었다. <광장>은 26살에 군복무를 하던 청년에 의해 쓰였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청년 최인훈은 ‘지적으로 충분히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면서 철학적 관념을 소설의 언어로 녹일 수 있는 당대 유일의 작가였다. 그가 문단의 총아(寵兒)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후로 <광장>은 그의 변함없는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국어교과서에도 수록되어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최인훈 역시 <광장>을 사랑하여 발표 이후에도 5번이나 고쳐 썼다.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고쳐 수록한 문학과 지성사 전집판을 읽고 있다.
5번째 개정한 <광장>은 3년에 걸치는 긴 시간을 들였다. 연대기적인 모호성을 없애고, 한자어를 없애고, 한글로 대체 가능한 것들은 다 바꾸었다. 그리고 현재형 어미와 콤마(,)도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성과 문체상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이명준의 자살을 둘러싼 이유가 이념갈등 속에서 한쪽을 선택하지 못한 나약한 지식인의 허무주의적 결말이 아니라, 이념을 넘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인 사랑으로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으로 나온다. 게다가 북한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체포되고 포로수용소에 갇힌 명준이 전후에 선택한 것은 공산주의 북한도 자유주의 남한도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중립국이었는데, 소설의 결말은 중립국으로 가던 배에서 자살을 하는 것이다. 왜 명준은 자살하였을까? 처음 소설을 썼을 때는 암시적으로 그렸던 결말이 새로 고칠수록 명료해지다가 마지막에 개정되었을 때는 분명해진다. 그는 북한에서 사랑한 여인 은혜와 그 뱃속에 있는 자신의 딸아이와 하나가 되기 위해 중립국이 아니라 바다를 행복하게(!) 선택한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었다.”
1960년 월간지 <새벽>에 실렸던 고(故) 우경희 화백의 삽화
바다는 푸른 광장이고, 연인과 딸을 품고 있는 사랑의 공간이다. 배 위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실종사건에 불과하지만, 주인공 명준에게는 확신에 찬 선택이었다. 명준은 결국 사랑으로 구원받았을까? 내가 보기에 ‘사랑’이야말로 최인훈의 소설 정신에서 가장 심층에서 작동하는 동력원이다. 사랑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도 관통한다.
소설가 최인훈이 고쳐 쓴 마지막 구절을 돛대 삼아 다른 작품도 관찰하고 싶다. 다른 작품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