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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저녁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by 빨간지붕

음식은 삶의 한 부분이며 우리 삶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일이 바쁜 시절에는 사실, 음식에 그리 관심이 없었지만, 은퇴 후의 삶에서는 먹는 일과 먹는 음식이 커다랗게 자리한다. 여유롭게 준비해서 느긋하게 먹는 음식이 새삼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남편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저녁에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부엌에서의 시간도 즐겁고 소중하지만 그래도 나는 부엌에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같이 요리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바지락 된장국과 깻잎순 무침, 가지무침, 돼지고기 볶음이다

먼저, 쌀을 씻어서 밥솥에 준비해 놓고, 한쪽 버너에는 깻잎순 데칠 물을 올려놓고 다른 쪽 버너에는 된장국 끓일 물에 다시마를 넣고 불을 켠다. 그사이 시금치와 깻잎순을 다듬어서 씻는다.

깻잎순 먼저 데쳐내고 팬을 올려 납작하게 썬 가지를 약불에 굽는다. 여름에 즐겨먹던 찐 가지무침이 왠지 찬바람 속에서는 안 어울리듯 하여 오늘은 구워본다.

밥솥의 취사를 누른다.

가지는 가끔씩 뒤집어주면 되니 이제는 돼지고기 두루치기 양념을 한다.

고춧가루, 고추장, 매실액, 간정, 양파, 고추 등 냉장고가 허락하는 온갖 양념과 채소를 넣고 조물조물하여 랩핑을 해 놓는다.

끓고 있는 된장국에는 시금치를 넣고 바지락 한 숟가락을 넣으면 완성이다.

중국 팬을 꺼내 들기름을 두르고 물기 짠 깻잎순 데친 것을 살살 볶는다. 집간장으로 간하고 파와 참깨 투하로 끝내고 구운 가지는 가늘게 썰어서 역시 집간장에 파와 청양고추, 참기름 약간 넣고 무치면 된다.

마지막으로 두루치기 볶기, 깻잎순 볶은 팬에 고기를 넣고 약불에서 은근하게 볶는다. 밥솥에서는 밥이 다 되었다고 경쾌한 음악소리를 낸다.

고기를 볶으면서 어울릴만한 그릇을 찾아 반찬들을 담는다. 이때 귀가한 남편이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며 식탁을 차린다.

1시간 30분 동안 나의 부엌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제 맛있게 먹자.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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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무침 깻잎순 무침 돼지고기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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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시금치 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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