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는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라는 수업을 선택했다. 철학자라는 단어가 내게 불러일으킨 이미지는 딱 하나, '깊고 어려운 학문'. 그런 어려운 학문을 섭렵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묘한 우월감을 선사했다. 물론, 남들 앞에서 철학자들의 명언을 멋지게 늘어놓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제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야호!)
곧이어 나는 철학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마치 낡은 안경을 버리고 새로운 안경을 착용하는 것처럼, 철학은 내 눈을 뜨게 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철학에 대한 열정이 커지면서 나는 철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철학은 교양과목으로 충분하니, 일단 다른 학과로 지원을 하자." 마치 찬물을 머금는 것처럼, 담임 선생님의 조언은 나에게 현실의 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나는 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20살 사회복지학과의 생활은 마치 콩나물 국밥과 같았다. 심심하고 밋밋하며, 영양분이 전혀 없었다. 내가 사회복지학과에서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사회복지학의 역사라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낯선 용어들과 복잡한 이론들은 나의 머리를 압도했다. 언제부터 사회복지법이 마련되었으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 생겨났는지를 배우는 과정은 마치 외계어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더욱이, 남들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눈을 반짝이며 나서는 동기들을 보며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엉뚱한 파티에 와있는 불청객처럼,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꼈다. 한 마디로, 나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도 늘 철학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었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비밀리에 다음 해 철학과에 지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여러 대학에서 면접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되었다. 면접장에 들어서면 모든 면접관들이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마치 심문하는 형사처럼. "사회복지학과와 철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데, 굳이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사회복지학과는 취업난을 뚫는 안전장치와 같았다. 관련 자격증도 나오고, 꾸준한 수요가 있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학과였다. 하지만 나는 그 안전한 틀 속에서 꿈틀거리는 권태로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면접관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를 가집니다. 저는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면서 늘 철학 생각을 했습니다. 꼭 철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마치 마지막 필살기를 날리는 것처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진심을 토로했다. 한 마디로 펀치를 날린 것이다. '철학이 좋은 걸 어떡해요?'
면접관들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웃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철학자가 되어주세요." 그렇게 나는 철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고,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었다. 소위 ‘간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챙겼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