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철학 여정은 훨씬 더 이전,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당시 나는 ‘질문 기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달팽이는 왜 느리게 움직일까?", "왜 하늘은 파란색일까?", "사람은 왜 죽는 것일까?" 나의 질문은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주변 어른들은 그에 휩쓸려 헤매이곤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바로 '달 스토킹 사건'이다. 어느 밤, 창밖을 바라보다가 나를 따라오는 달을 발견하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는 곧바로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달이 자꾸 나를 따라와! 왜 그렇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달이 지구로부터 몹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지구와 달이 서로 공전과 자전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그들의 설명은 나를 납득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달은 왜 항상 나를 따라오는 것일까? 그 질문은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마침내 나는 스스로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어린이 과학책, 바로 나의 비밀 무기였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놀라운 사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은 실제로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스스로 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 마치 어둠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해당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알아갈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후로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어 질문을 퍼붓고, 중학교 때는 엉뚱한 질문으로 선생님을 당황시켰다. 고등학교라는 입시 지옥에서도 나의 질문 열정은 식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결국 선생님들은 나에게 '윤리 과목을 가장 좋아하는 학생'이라는 칭호를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가진 이 폭풍 질문의 이유를 '철학 유전자'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 조상 중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위대한 철학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혹시 니체의 콧물이라도 묻은 책을 읽었던 적이 있을지도! 어쨌든 그 정도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질문을 던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 유전자는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철학 유전자가 주어져 있다. 우리 주변의 세상, 우리의 존재, 삶의 의미 등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은 철학적 사유의 핵심이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철학적 사유를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의심하고,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궁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모두에게 주어진 철학 유전자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