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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Feb 09. 2020

진정한 친구는 호구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주기적으로 받아보는 메일링 리스트에는 '따뜻한 하루' 사이트에서 보내는 감성 편지가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용을 읽다 보면 가문 땅에 보슬비가 내리는 기분이 든다. 한 번은 '진정한 친구'에 대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간략하게 요약하겠다. 아버지가 친구에게 큰돈을 빌려주었다. 친구는 사업을 하다 돈을 날리고 잠적했다. 가족들은 친구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끝까지 믿었다. 어느 날 사고가 나서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친구는 죽기 전 자신의 사고 합의금을 '아버지'에게 주기로 했다. 가족들은 친구의 행동을 보고 아버지 같은 진정한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동안 공감을 하며 잘 읽어왔으나 이번 편지에는 냉소가 일었다. 저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아니, 돼서는 안 된다.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 걸 보고 '나 참 많이 달라졌구나'싶다. 


그간 사회생활을 해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바로는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다른 이에게는 단점이 되었고, 상황에 따라 똑같은 행태가 전혀 다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진정한 친구!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에게는 과연 진정한 가족이었나? 


맥락을 볼 때 큰돈을 빌려주면서 가족과 상의조차 하지 않은 듯하다. 막상 일이 틀어지자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을 것이다. 큰돈을 떼이고 나서 가족이 겪었을 고통은 어떠했을까? 살던 집에서 더 좁고 외진 단칸방으로 이사 갔을 수도 있고, 학원비가 없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중단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족들의 고생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가해자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친구에게는 이런 의리남이 없겠으나 가족에게는 이런 호구가 없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면 좋겠으나, 그게 힘들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가족과 친구 중 누가 더 소중할까?  


어머님은 나의 대학생 시절부터 많은 질책을 하곤 했다. "너는 가족한테는 못 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해. 지긋지긋해!" 


그랬다. 나는 외부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늦은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어머니 말을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됐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아내의 말을 듣다 보니 그간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이 한층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달라졌다.


결혼해서 가족이 생긴 후 돈을 빌려줄 때는 무조건 아내와 상의를 한다. 내가 번 돈이라도 결국 가족 돈이 아니겠는가. 무리한 부탁이다 싶으면 아내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큰 부담 없는 요청에는 '당신 생각대로 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다. 상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의견을 들으니 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진정한 친구라는 말은 많지만 진정한 가족 또는 진정한 부부라는 말은 자주 못 들어봤다. 가족이나 부부는 동등한 관계라기보다 가장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부부 사이, 가족 관계에서도 원만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겠는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진정한 친구에 대해 내가 느낀 바를 들려주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친구는 부부라고 생각해요.

당신과 저는 부부이기도 하지만 평생을 한 방향을 보면서 같이 걸어가야 하는 친구이기도 하지요."


부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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