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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Aug 02. 2020

기분이 안 좋을 때 대처하는 방법

인생의 고해(苦海)다. 괴로움의 바다다. 어렸을 적에는 친구들과 관계 맺는데 서툴러 고생했다. 대학교 때는 타고난 성향을 바꾸느라 애를 먹었다. 한의사가 되고 나서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하게 되니 '인사'가 문제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건만 사람 관리하는 게 참 어렵다. 중간 관리자가 요령 피우면서 일을 회피해 말단 직원들이 불평을 터트리는가 하면, 무례한 태도를 한 번 지적했더니 자신한테 '모멸감'을 주었다며 무단 퇴사한 일도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싶지 않은 직장'을 만들지 못한 나의 근본적 책임이다. 


직장 내 인간관계로 마음이 흔들리면 업무까지 지장을 준다. 이런 일이 일어난 날에는 환자를 대하는 나의 손길도 알맹이 없이 겉돌기 마련이다. 이 괴로움을 무로 돌릴 수는 없지만, 내상을 조금이라도 덜 입는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 힘든 상황에서 술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기분 좋을 때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마실 때는 잊지만, 깨고 나면 그대로인 현실이 더 좌절감을 주기 마련이다. 술 대신 몸을 움직이는 편이다. 


일전에 묘한 경험을 했다. 평소에 주2회 필라테스를 한다. 운동 가는 날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지친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며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했다. 새롭고 어려운 동작이 많아 유독 힘들었다. '악, 뭐가 이렇게 힘들지?' 육체의 힘듦이 마음의 힘듦을 넘어서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더 큰 수고로움 앞에서 작은 수고로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팀 패리스의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책에서는 곱씹을 만한 대목이 나온다. '압박을 느끼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게리 베이너척(gary vaynerchuck)'의 대답이다. 

가족이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상상을 한다. 정말이다. 기묘하게 들리겠지만 이 상상이야말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절대적인 힘이다. 아주 어두운 장소로 가서 그 감정을 통절하게 느껴본다. 상실의 고통을 가슴 깊이 새기다 보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우주를 다 뒤져도 가족을 잃은 고통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고객을 잃은 것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도, 비웃음과 조롱을 당한 것도 모두 감사하게 된다. 


두 번째.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기대한다. 


수동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생겨난 무수한 문제들. 정말 글로 쓰면 A4 500장은 충분할 이야기들이다. 그 많던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거나 사라졌다. 


간판 문제로 다른 세입자와 갈등이 생겼을 때 

나이롱 환자가 가짜 기자들을 데리고 들이닥쳤을 때

추나 테이블이 놓인 위치 탓에 아래 핸드폰 매장에 소음을 유발했을 때

한의원 내 빌런이 착한 직원들을 괴롭힐 때 

건물주와 임대료 갈등이 있었을 때 

의료 사고가 났을 때

경비는 높은데 매출이 저조해서 한숨이 절로 나올 때 

한의원 화장실 변기가 막혔을 때 


이 수 많은 때들이 나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가 이제 과거의 환영이 되었다. 물론 새로운 때 들이 나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왔다가 다시 지나갈 것이다. 말도 못할 정도로 큰 고민도 있겠지만 100년 안에는 사라지지 않겠는가? 


친하게 지내는 후배 한 명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근무하고 있는 대표원장님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사직서를 냈다는 것이다. 2주 후에 그만두는데, 지금 이 어정쩡한 상태가 괴롭다고 했다. 그래서 말해줬다.


'2주 후에는 사라질 고민이네.' 


모든 스트레스에 이런 꼬리표가 붙으면 참 좋겠다. '2주 후 사라짐', '유통기한 2020년 O월 O일'


세 번째. 글을 쓴다.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한다. 아마 시각화시켰을 때 뇌의 판단회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 섞이고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있는 무수한 생각들. 글을 쓰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면, 실체가 눈에 보인다. 막상 써놓고 보면 생각보다는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다. 머릿 속에서 너무 뻥튀기가 많이 된 까닭이다. 이제 저 종이만 태워버리면 상황이 끝날거라는 희망찬 상상도 하게 된다. 


예전에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보았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글을 매일 쓰라는 게 핵심이었다. 2주 정도 따라해보았는데, 그야말로 마음을 토하듯이 써내려갔다. 머리 속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그 때 머리도 똥을 싸야 하는구나 느꼈다. 마음에도 숙변이 차 있어서 자주 빼줘야 한다.


네 번째.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내가 힘들 때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라?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려서 '이런 불운이 있을까 싶을'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찾고는 했다. 


이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인데, 누가 그런 나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해보자. 남의 불행을 이용하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생각보다 효과도 없다. 사람의 뇌는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잘 느끼지만, 나보다 못한 처지를 보면서 만족감을 잘 느끼지는 않는다. 사람의 욕심이 작동하는 기제가 그렇다. 그래서 이 방법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적어보았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대처하는 나만의 루틴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다. 누군가는 썩 괜챃은 비법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이거다. 피하지 말자. 피할 수 있으면 걱정거리가 아니었겠지. 술이나 도박으로 그 순간만은 잊어보겠다든지, 인생을 접어버린다 등의 극단적인 선택들은 하지 말자. 나처럼 실수 많고 어설픈 사람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 않는가? 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해보자.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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