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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Jul 22. 2020

직원의 입냄새 어떻게 할까요?

한의원을 운영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된다. 그중에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면접을 보러 왔는데 오랜 한의원 경력을 가지고 있고 일 욕심이 강해 보여 같이 일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데스크에서 수납 접수 및 환자 상담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알아버렸다. 1m의 지근거리에 도달하면 이상한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지? 그녀가 입을 벌릴 때 냄새가 났다가 입을 닫으면 나지 않았다. 저게 말로만 듣던 구취구나. 


사람은 모두 구취가 난다. 나도 난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 상태에서는 누구든지 날 수밖에 없다. 보통은 밥을 먹고 양치를 하면 어느 정도는 가신다. 하지만 그녀는 정도가 심했다. 


한의원에서는 아침마다 그 날 치료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 그때 모두가 작은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서 전체 공지사항을 듣고 자기 의견을 한 마디씩 낸다. 그 순간이 괴로운 순간이 되었다. 그녀가 얘기를 할 때 탁자 전체로 퍼지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코를 찔렀다. 내가 느꼈으니 다른 직원들도 느꼈을 것이다(차마 다른 분들께 물어보지 않았다). 환자분들 상담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이건 큰 고민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 난색을 표했다. 


A : 여자한테 그런 얘기하면 큰일 나요. 차라리 같은 여자가 말하게 주변 직원한테 넌지시 물어봐요.

B : 직접 말하면 자존심이 상할 거예요. 선물로 구강 세척기 같은 걸 줘보면 알아서 느끼지 않을까요?

C : 아, 정말 고민이겠네요. 당신은 그런 난감한 일들을 많이도 겪네요. 

D : 구취 약을 지은 다음, 보약이라고 거짓말하고 먹여봐요. 

E: 그 부분은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분명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자리를 만들어서 '당신은 건강상 문제가 있다. 그 부분이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니 우리 함께 치료해보자. 치료하지 않으면 같이 가기 어렵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E를 택했다.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분 상해서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심한 게 아닌데, 내가 냄새에 너무 예민했던 게 아닐까? 본인이 모르고 있다가 충격받는 거 아냐?  


시간이 되었다. 호출을 받고 그녀는 진료실로 들어왔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운 대로 말했다. '같이 치료해 봅시다'라는 말을 끝내자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제가 비염이 있어서 그래요."라고 답했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내 우려와 달리 분위기는 담담했고, 긴장감이 돌지 않았다. 나는 이제 부지런히 약을 지어서 직원을 먹였다. 원래 구취는 위장의 습열로 음식물이 과다 부패해 그 냄새가 올라오는 거라, 이를 치료하는 약을 짓는다. 그런데 직원의 말마따나 비염의 문제로 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면 다른 약을 지어야 했다. 


한 달, 두 달 약을 먹이던 중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원래 이맘때 코가 많이 막혔는데, 원장님이 준 약 먹고 코가 뻥 뚫렸어요. 참으로 다행이다. 우리 환자들에게도 다행이다. 


벌써 한 참 전 일이다. 그 당시 저 고민 때문에 맘고생했던 일이 눈에 선하다. 그때 배운 교훈 하나. 할 말은 하자. 생각보다 큰 일 안 난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키우면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의 대사는 이럴 때 유효하다. '생각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202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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