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 Apr 26. 2020

뭣이 중한디?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의미

아이가 둘이다. 나와 아내는 맞벌이다. 첫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장모님이 와 계신다. 그분이 육아를 발 벗고 도와주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모님은 4남매를 키우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아이를 업고 미용실을 꾸려나가면서 심신이 지칠 무렵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육아가 참 힘들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얘를 낳으면 내가 도와줘야겠다.  


그 결심이 우리 집에 와서 열매를 맺었다. 우리 부부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둘 다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육아 우울증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첫째와 둘째를 보살펴주는 장모님의 수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변명하자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다. 소위 자기 계발의 시간이다. 체력을 올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병원의 미래를 위해 이런저런 기획을 한다. 그러다 보니 밤 10시, 11시. 어쩔 때는 12시 가까이 되어 들어간다. 


어렴풋이 잠에 빠져들었던 아이들이 '삐비빅' 문 여는 소리에 황급히 뛰쳐나온다. 명확한 발음으로 '아빠'를 외쳐댄다. "아빠, 아빠, 아빠!" 


반가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교차한다. 장모님의 핀잔이 이어진다. "오려면 일찍 오든지. 얘들 딱 자려고 하는데."


며칠 전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운동을 하고 귀가했다. 밤 10시. 아이들을 업어주고 안아주며 죄책감을 덜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장모님이 말했다. 첫 아이에게 애정 결핍이 보인다는 것이다.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도 또래에 비해 말을 잘하지 않는 것도 그 탓이라 했다. 할머니가 대체할 수 없는 부모의 자리가 있단다. 그 자리를 너희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따끔한 질책. 


내가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멀리 발령을 받은 학교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한약방을 운영했다. 부모님이 나와 형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할머니가 빈 자리를 대신했다. 4,5살 때까지 할머니 집에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고 열등감 많은 나를 바라보며 그 유아기 시절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부모님 탓을 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의 한 대목을 읽고는 내 생각이 맞다며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사실은 누구 닮아서 이럴까요? 그런 성격은 어머니로부터 다운받은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아주 어릴 때 받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듯이 이미 자기의 카르마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애정 결핍으로 힘들었다는(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사람이 아이에게 애정을 주지 않다니.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남자가 어느덧 자녀를 학대하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20대 무렵 인도 배낭여행을 하다 비구니 스님을 만났다. 언젠가 마음이 허하여 그분께 전화를 했다. 며칠 후 편지가 왔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대 어딜 그리 바삐 가고 있는가.

이 몸은 공적하여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도 없다.

이번 생 잠시 인연 따라 나왔다가 인연이 다 되면 인연 따라 갈 뿐이다.

이 몸 또한 그러하다.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인연 따라 잠시 갈 뿐.

그러할진대 어디에 집착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며 어딜 그리 바삐 가고 있는가.

갈 길 잠시 멈추고 바라볼 일이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 유효하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나에게는 지금 뭣이 중한가?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은 잘한다. 허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썩 현명하지는 않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지 되새겨볼 때다. 그래야, 그래야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2020. 4)





이전 14화 어둠 속의 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