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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May 03. 2020

어둠 속의 대화

어두운 화장실에서 깨달았던 사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기획전이 있었다. 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을 가이드와 걷는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에만 의지한 채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갔다. 시각이 사라진 공간을 상상력이 채워 넣었다. '자, 여기는 선착장입니다. 배를 타겠습니다.' 건물 안에 웬 선착장이 있겠냐마는 배를 타는 느낌이 선명했다. 물을 건너 숲을 거닐었다. 감각의 불편함이 새로운 체험이 되었다. 


완전한 어둠 속에 있어 본 적이 있는가? 빛 공해가 심각한 요즘엔 어둠을 오롯이 느끼기 어렵다. 조명을 끄고 커튼을 닫아도 어딘가 빛이 새어 나온다. 거기에 끄달리면 깊이 내면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시각이 기능하는 한 다른 감각은 힘을 내지 못한다. 


며칠 전 화장실에 있는데, 아이가 불을 껐다. 완전한 어둠이 됐다. 소리조차 없다. 어둡고 조용하고 축축한 공간. 태어나기 전 뱃속 양수가 이런 느낌일까?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아무것도 없음이 실감 났다. 그걸 말해준 이가 있다. 


나는 20대 후반에 미국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어느 날 머물렀던 모텔. 주인은 인도인이었다. 계산을 마친 내게 말했다.  


"태어나면 아이들이 주먹을 꽉 쥐고 있지. 그러다 늙어 죽으면 주먹을 펴. Nothing(아무것도 없어), Nothing."


인간은 본능적으로 꽉 잡으려고 한다. 갈 때가 되면 안다.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걸 몰라서 괴롭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성제를 얘기했다. 괴로움(고苦), 괴로움의 원인(집集), 괴로움의 소멸(멸滅), 괴로움을 끊는 방법(도道).


화장실에서 우리는 싼다. 먹고 마셨던 모든 게 우리 몸을 그저 스쳐 지나간다.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매일 우리는 시시포스처럼 열심히 돌을 굴려댄다. 그 돌은 다시 굴러내려 간다. 당신은 열심히 산다. 그런데 마음이 허하다. 불 꺼진 화장실에 잠깐만 앉아보라. 분명 느끼는 게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202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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