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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Mar 29. 2020

배부른 고민

나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깨달음 

잡지를 보았다. 인천 미추홀 구에 30년째 사는 김 모 씨 이야기다. 지하 1층 2호에 산다. 맞은편 1호는 몇 년째 빈집이었다. 장마로 물이 들어오면서 1호의 변기가 터졌다. 집주인은 연락도 되지 않는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을 때 시세차익을 노리고 구입했다가 지정이 해제되니 내버려 둔 모양이다. 똥물이 2호까지 흘러 들어오는 상황이 곤욕스럽다. 사비를 들여 1호를 수리했다. 같이 사는 손자 2명과 김 모 씨는 이후 피부 알레르기 질환을 앓는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안 된다. 


나는 그들의 곤경을 알 수 없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볕이 들지 않는 지하 단칸방. 장판과 벽지에 배어있는 똥물의 역한 냄새.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또 다른 풍경 하나.


서울 신림의 다세대 주택 2층에 사는 내 친구. 화장실 공사를 맡겼는데, 상대방이 무슨 앙심을 품었는지 변기 속 배출구를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이후 화장실 변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친구는 급한 용무가 생기면 마음이 급해졌다. 한 밤중에도 집을 나와 근처 공원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집 화장실은 내 것이 아니야."

 

언젠가는 근처에서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뭘 건드렸는지 친구네 집 아래 지반이 함몰되어 집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공사한 업체 측에서는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고소를 진행 중이지만 생각보다 절차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방바닥에 공을 놓으면 한쪽으로 도르르 굴러갔다. 현관문을 열어 놓고 놔두면 저절로 닫혔다.

 

"우리 집은 공이 저절로 굴러간다."


나는 그의 곤경을 알 수 없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제 집 화장실도 맘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답답함. 언제 집이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함. 경사진 문짝과 방바닥을 보며 치밀어 오를 분노. 


나 홀로 세상의 온갖 고민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 이들을 보면 그게 착각임을 안다. 나 말고도 아픔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이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그들을 위해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는 것으로도 족하다. 타인의 고통을 알자. 그러면 타인도 나의 고통을 알아줄 것이다. 적어도 안도현 시인의 말마따나 연탄재 함부로 차지는 않게 될 테니까. 




Image by kdk905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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