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 Apr 06. 2020

지금 행복한가요?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적는 글

그럴 때가 있다. 무작정 걸어보고 싶은 날. 일요일 아침 한강 둔치로 나갔다. 햇볕이 차츰 내려와 서늘한 새벽 기운이 옅어지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둘이서 걷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지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일렬종대 자전거 무리가 맹렬하게 페달을 밟는다. 달마대사처럼 동쪽으로 간다. 역사(力士)처럼 불끈 솟아오른 힘줄이 종아리를 수놓는다. 사람의 힘은 페달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로 변한다. 대퇴사두근에서 시작된 수직의 힘이 수평 에너지로 바뀌어 자전거 몸체를 앞으로 옮겨놓는다. 바퀴의 맹렬한 RPM에 바큇살을 쳐다보던 눈이 아득하다. 


그들을 바라보며 미국에서 자전거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 6000km를 달리는 동안 무수한 변수와 우연이 서로 휘감고 들었다. 일상의 당연함이 통용되지 않았던 순간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리움이란, 모든 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대목을 내 식대로 바꿔보면 이렇다. "행복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당연은 당연하지 않다. 일상에서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바퀴가 터지지도, 체인이 나가지도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근처에서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다. 


바퀴 속 튜브가 타이어와 규격이 맞지 않아 바람이 푸시시 빠져버렸다. 날이 어두워지는 황량한 고속도로에서 몹시 불안했다. 자전거는 밟으면 앞으로 나간다는 명제가 무너져버렸을 때, 나의 안온한 세계도 무너졌다. 그동안 자전거에 문제가 없어서 행복했음을, 자전거가 문제가 생기자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이 문제를 삼기 시작하자, 과거는 행복이 되었고, 현재는 불행이 되었다. 그래서 미래의 행복을 갈구했다. 


뉴욕을 벗어나 뉴저지 주에 입성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가 픽업트럭을 타고 내 옆을 지나갔다. 눈에 띄는 내 복장을 보고 그들은 한 마디 했다. 


"너는 눈에 띄어. 밤이 되면 이 근처는 불안하지. 타깃이 될 수도 있어."


상상력은 공포의 근원이었다.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근처 안전한 호텔을 물어보았다. 둘이 의논을 하던 몇 분간 입에 침이 말라갔다. 


"자전거를 여기 트럭에다 실어. 우리가 괜찮은 호텔로 데려가 줄게."


10분 정도 가자, 한적한 교외가 펼쳐졌다. 자연과 주택이 잘 조화된 전원주택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그중에 호텔 하나가 몸체를 드러냈다.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지 클럽 음악이 1층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알았다. 빼앗겼다가 다시 얻었을 때 기분이 얼마나 째지는지를 말이다. 아무도 오늘 밤 머리에 총알구멍이 생길지 생각하지 못한다. 어느 날 그게 현실이 될 때 내가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그 현실이 다시 상상 속으로 가라앉을 때 내가 알던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행복했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나와 너는 행복하다.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다.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걷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 가고, 저녁에 잠자는 일. 24시간 전, 나는 일어나지 못했고, 걷지 못했고, 밥을 먹지 못 했고, 물을 마시지 못했고, 화장실을 가지 못했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 어제까지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한다.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 (2020.4)



이전 11화 화날 때 제대로 화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