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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Sep 26. 2020

라면을 끓이다
화재로 다친 어린 형제

인천시 미추홀구에 사는 아이들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는데 불이 났다. 둘 다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학대 또는 방임한 정황이 있다. 아동보호기관과 경찰에서 어머니의 양육권을 그 전부터 제한하려 했으나 법원은 제동을 걸었다.  우연해 보이는 사고는 필연을 먹고 자랐다. 


내가 미추홀 아이들의 사정을 다 알지 못 한다. 부모님 찬스(?)로 학대받지 않고 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직업을 얻은 내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내게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얻기 히든 특혜요, 행운이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의 정신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장면이 있었다. 소년소녀 가장이었던가, 아무튼 굉장히 불우한 환경에 놓인 아이였다. 그 어린 아이가 산전수전 다 겪은 6,70대 어른만큼의 스트레스를 가진 걸로 나타나 깜짝 놀랐다. 한창 발달하는 아이의 뇌가 나쁘기 그지 없는 외부 자극을 스폰지처럼 다 빨아들인 것이다. 미추홀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한 번 더 눈길이 갔던 이유는 '미추홀'이라는 지역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일어난 또 다른 힘겨운 사연을 주간지에서 보았다.


지하 단칸방에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손자가 있었다. 맞은 편 방은 재개발 이익을 노리고 타지 사람이(아마도 서울 사람으로 추정한다) 사놓은 후 방치했다. 장마가 나서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방의 변기가 터졌다. 온갖 오물이 지하에 넘친다. 퍼도 퍼도 밀려오는 똥물에 시달려서 조손 가정은 모두 피부병을 앓고 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곳. 똥물과 화상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며칠이 지나  'ooo oo'라는 복지단체에서 화상입은 형제를 돕자는 모금 글이 올라왔다. 마른 목에 물을 축이는 기분으로 3만원을 기부했다. 부끄러울만큼 작은 돈이다. 게다가 그들을 의심한다. "사람들이 모금한 돈을 제대로 쓸까?' 유니세프처럼 공신력 있는 자선단체조차 기부금의 상당수는 순전히 운영 경비로 다 쓴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기부'에 대한 신앙은 사라버렸다. 이 분야에서 나는 무신론자다. 


일할의 측은지심과 자선, 나머지 9할의 의심과 냉소. 관음증 환자처럼 그런 씁쓸한 사연을 읽고 찻잔 속의 태풍처럼 분노했다가 비맞은 모닥불처럼 사그라든다. 아무한테도 뭐라 못 하고 라면 화재를 '라면 화제'라고 쓴 신문사에 옹졸하게 분노한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를 이렇게 남몰래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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