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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Mar 22. 2020

아버지와 뻐꾸기시계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의미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하셨다. 국민학교(당시에는 초등학교가 아니었다)를 마치면 거기로 가서 밥을 먹었다. 가게 한 켠에서 낮잠도 잤다. 때가 되면 괘종시계가 근엄하게 '딩~ 딩~ 딩' 울리곤 했다. 


형과 내가 집과 학교를 왕복하듯, 아버지도 집, 가게를 오갔다.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듯이 그랬다. 


어느 날 3층 집으로 이사를 갔다. 3층은 가정집, 1층은 가게였다. 집과 가게가 아주 가까워졌다. 하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침을 드시고 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점심에는 3층에서 밥을 먹었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으면 다시 3층으로 올라왔다. 층과 층을 오가는 수직 이동만 있었다.  


수평 이동하는 날은 일요일뿐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등산을 갔다. 등산이 없는 날은 건강도로를 따라 한 바퀴 산책을 했다. 복장은 매번 똑같았다. 10년 이상 된 등산복과 낡은 등산 모자. 


2015년 아버지는 아팠다. 조심하고 잘 관리하면 다스릴 수 있는 상태였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음식 관리도 하고, 시에서 제공하는 기체조 강습도 들었다. 


2019년 병이 심해졌다. 큰 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아보았다. 늦었다. 그 며칠 후 아버지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의 눈빛이 허했다.


어머니는 매일 버스를 타고 요양병원에 갔다. 과일, 비타민, 올리브 유, 약 등을 가져갔다. 담소를 나누다가 다음 버스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를 배웅하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아침 먹고 이빨 닦고, 점심 먹고 이빨 닦고, 저녁 먹고 이빨을 닦았다.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밤에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자 병원에서 면회를 금지했다. 어머니는 병원 문 앞에서 물건만 전달하고 다시 돌아온다. 못다 한 얘기는 전화로 한다. 하루는 전화를 하는데, 뻐꾸기시계가 울었다. 이사 온 첫날부터 우리와 함께 한 뻐꾸기시계.  뻐꾹, 뻐꾹, 뻐꾹. 그 소리에 아버지는 울음을 터트렸다. 전화를 끊고 어머니는 매미처럼 울었다. 


9시 뻐꾸기가 울면 가게로 갔다가 1시 뻐꾸기에 점심을 먹고, 6시 뻐꾸기에 귀가했던 아버지. 이제 뻐꾸기 없는 병원에서는 출근할 수도, 귀가할 수도 없다. 


아버지는 말했다.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식탁에 앉고, 화장실 가고, 계단을 내려가고, 의자에 앉고,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좋겠다. 밋밋하고 단조로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누가 말했다. "내가 헛되이 흘려보낸 오늘은 누군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다.  


(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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