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거리가 필요한 때
5월 초 학교에서 아이 일로 연락이 오기 전.
나는 급 엄마와 일본 여행을 갈 생각에 설렜다. 엄마와 이야기하지도, 티켓팅도,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곳이니까. 오사카 모녀여행, 자유여행 등을 검색하며. 밤늦게까지 시작된 온라인 여행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전화가 왔고, 여행은 무산되었다.
제일 중요한 게 아니 일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데.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잘 안 다스려졌다. 여행뿐 아니라 다른 나의 일정과 시간도. 백수지만 과로로 쓰러질 만큼(?) 바쁜데, 놀고도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할 게 만 가지인데, 아이 일로 모든 게 스톱되었다.
학교에 방문을 하고,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상담센터를 알아보고, 실제로 들인 시간만 보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주위에 묻고, 고민하고, 알아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걸 생각하면,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으로 카운팅 할 수 없다.
내 자식이니 품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6학년 때 친구와의 일이 그게 뭐라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일을 키우는 걸까 싶다. 실은 그 바탕에는 조금은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이 깔려있다. 늘 열심히 살았고, 모처럼 얻게 된 휴직. 나도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나는 이기적인 엄마인 걸까. 워킹맘이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굳이 분류하면 희생적인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희생 마인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걸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던 건가.
실은 정서 관련 일이 있기 전 3~4월은 아이의 수학 문제로 마음도 몸도 한참 고생했다. 초등 5~6학년 수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아이가 수포자의 문턱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영재가 아닐까 싶을 만큼 똑똑했던 아이. 지금도 눈치는 백 단. 열심히는 하지 않아도 수업은 듣고, 진도는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뒤늦게 공백을 매우기 위해, 현재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아이와 실랑이를 해야 했다. 이미 머리가 큰 아이는 생각대로 따라와 주지 않았고, 너무나도 간단한 연산 문제조차 풀지 않는 아이가 한없이 답답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공부에 적성이 있는 건 아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더 행복하거나, 부자가 되는 게 아닌 것도 안다. 오히려 좋아하는 걸 하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기적 이게도 나의 아이가 공부를 못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잘했으니까 당연히 잘하겠거니 딱히 근거 없는 자신감.
아이를 탓할 수만은 없는 걸 알기에,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이것도 시간도 에너지도, 이해가 필요한 일이었다. 거기에 정서 검사가, 피구가 얹혔다. 나의 기대치는 충족되지 않는데, 자꾸만 사건을 만들어가는 아이. 만일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기대치를 충족해 왔다면,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이 덜했으려나.
치워줘도 늘 어지러운 아이의 방. 책상에는 무언가 하나라도 얹어 놓는 순간 바로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잡동사니가 쌓여있다. 침대 커버는 바닥에 끌리고, 의자와 구석 곳곳에 교복과 속옷 더미들이 놓여있다. 옷장 서랍은 열린 채 필요한 것만 꺼내 쓰고, 바닥은 온통 머리카락과 먼지 투성이. 몇 번을 말했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사춘기라 그런지 늘 샐쭉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예전이라면 옷가지를 정리해서 넣어주고, 꼬셔서 책상을 정리하고, 시트는 다시 깔아주고, 바닥을 쓸어줬겠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될 거 같아서. 내가 해준 만큼 바라는 이기적인 엄마가 될 거 같아서. 이제 너를 사랑하는 만큼, 서로를 위해 거리를 유지해 보려고. 항상 문을 닫아주길 원하는 너의 공간. 그건 너의 영역이고 너의 책임으로 남겨줄게. 그러면 너에 대한 기대도 조금은 덜해질까.
꿈꾸던 5월 오사카 여행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제 날씨가 더워져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한다. 아마 여행을 다녀와야 아이에 대한 서운함이 풀어지려나. 그때까지는 여전히 삐짐 모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