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내 새끼는 내가 챙긴다.

풀배터리 검사를 받기 위한 험난한 여정

by 나르샤
각자도생.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함.


삭막한 직장 내지 사회생활에서나 할 법한 이 단어를 나의 아이 케어에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아이의 상태를 인지한 건 위클래스, 학교 상담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였다. 3년 간격으로 학생들에게 실시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관심군으로 분류되었다고. 집에서 매일 부대끼면서도 인지하지 못한 내 아이의 문제를 캐치해 준 건 감사한 일인이다. 다만 그 뒤가 막막했다.


외부기관의 검사나 상담이 필요하다고는 이야기해 주었지만, 심리상담센터를 말하는 건지, 병원을 말하는 건지, 일반 정신과를 가면 되는 건지. 검사는 어떤 걸 해야 하는지. 몇 번의 통화 뒤에 풀배터리 검사라고 알려주었지만, 그 또한 꼭 이 검사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모호함으로 말을 마쳤다.


아이가 1등을 하거나,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거나 하는 이야기는 도처에서 들리지만.... 내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누구에게 쉽게 꺼내겠는가. 위클래스라고 따로 상담실까지 운영할 정도면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가이드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저 내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건가. 급한 마음에 당장 가능한 인터넷 인터넷 서칭을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른 체 닥치는 대로.


정서행동 특성검사

아이들의 장난 같은 질문과 답변이 보인다.

"이거 사실대로 체크하면 어떻게 됨? 비밀보장이라는데"

"상담실 불려 가고, 부모님 알게 되고 샘도 알게 되고 개 피곤해짐. 적당히 괜찮은 척 하삼"


아, 이런 검사였구나. 문항수가 많지 않다 보니(초등 65문항, 중고등 63문항), 머리가 큰 중고등 아이들은 충분히 속내를 감출 수 있다.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아이에게, 힘들다고 손 내밀어 준거에 감사해야 하는구나.


심리상담센터

집 근처에 심리센터가 이렇게 많았었나. 무심코 지나쳤던 신규 오픈 센터 간판이 떠오른다. 일일이 전화를 해봐야 하나? 근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상담을 받지? 찾아보니 쉬운 난이도의 자격증만으로도 오픈이 가능하단다. 어떤 자격을 갖고 있고, 기존 레퍼런스도 체크하는 게 좋단다. 다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하지?


천성이 T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알아보니 놀랍게도 상담센터 개설에는 법적 필수 자격 요건이 없다. 얼마 전에 본 상담센터 프랜차이즈 창업 광고가 떠올랐다. 마음의 병이 늘어나는 시기를 파고드는 창업의 한 종류. 당혹스럽다.


국가자격으로 임상심리사 1급/2급이 있다. 1급은 2급 취득 후 경력 3년 이상 혹은 석사 이상 취득이 가능하다. 일단은 임상심리사 1급을 보유한 상담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걸까?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건 객관적인 지표니까. 다만 여러 곳의 홈페이지를 둘러보아도 구체적인 자격증까지 명시한 곳은 드물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풀배터리 검사는 검사자체보다도 해석과 결과 상담이 중요한데, 임상심리사 자격을 보유해야만 가능하다. 모든 센터에서 이 검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


소아정신과

왠지 아직은 좀 거부감이 생기는 정신과. 게다가 소아정신과라니. 이번에 알아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아정신과가 따로 구분되어 있다는 걸 몰랐다. 맘카페를 통해 알아본 유명한 병원은 대기만 몇 개월이 걸릴 정도란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구나.


심리상담 센터의 약점(검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움)을 고려하면, 의사가 있는 병원이니 신뢰가 간다. 다만 병원은 기록이 남는다. 혹여나 별 거 아닌(이라고 믿고 싶기에) 일로 괜스레 아이를 기록까지 남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찾아보니 병원에서 풀배터리 검사를 할 경우 결과의 이상 여부와 무관하게 이후 보험 가입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단다. 마침 딱 아이 보험을 알아보던 참인데...


친한 지인 수소문

정보의 바다에서 지쳐갈 때 즈음, 친한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놀랍게도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보였던 다른 지인도 아이 문제로 치료를 한 적이 있단다. 혼자 끙끙 싸매고 굴을 파는 것보다, 이렇게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있었다니.. 병원에 가야 할지, 심리센터를 가야 할지, 아이는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등을 물었다.


심난한 중에 만난 시누. 친구처럼 지내고 조카도 비슷한 또래다. 망설이다가 이야기를 꺼내니 마침 조카가 작년에 풀배터리 검사를 했단다. 띠용! 행동에 이상한 점이 보여서 놀래서 엄청 알아봤었다며. OO대학 부설 심리센터! 비용도 다른 사설 심리센터와 비슷하단다. 돈보다도 일단 대학교 부설이니 신뢰가 간다.




며칠 간의 헤맴 끝에, 상담샘의 큐사인을 받자마자 행동개시. 마음은 대학부설 센터로 기울었지만 이놈의 의심병. 사설 기관에도 연락을 해보았다. 전체적인 비용은 비슷했고, 사전 상담 - 검사 - 결과 상담 일정은 사설 기관이 좀 더 빨랐다. 다만 원장/부원장 상담의 비용이 다르다는 게 의아했고, 이미 마음이 기운 대학 부설 센터로 정했다.


요즘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로 문의하는 아이들이 많다더니 그래서일까. 월요일 상담을 요청했는데, 일정을 잡는데만 3일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첫 사전 상담은 다음 주. 내 마음은 급한데 그건 내 사정이구나. 암 진단받고 병원 예약 잡다 울화통 터지고 서러웠던 기억이 교차한다. 세상일이 다 그런가 보다.


커밍 아웃 후로 여전히 주시하며 관찰 중이다. 지극히 멀쩡해 보이는 아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잠시 우울했다가 사라진 건가 싶다가도, 한 번씩 외롭다는 말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나는 계속 이런 시간을 보내게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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