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울었을까? 안 울었을까?
일주일 전 아이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아이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샘께 들어서 알고 있다.
근데 어느 누구도 먼저 이야기 꺼내지 못했다. 아이는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만, 나는 괜스레 예민한 아이를 자극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 입에서 듣게 되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그래도 외부 기관 검사와 상담을 받으려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 커밍아웃이 필요했다.
집에서 이야기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쏙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날 좋은 주말 낮,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 스타벅스 초코라테도 아이를 꼬셨다.
표면상 목표는 수학숙제 끝내기였는데, 정작 숙제할 문제집은 갖고 오지 않는 천재적인 너! 깜빡했다고 하는데, 이 깜찍한 거짓말을 그저 모르는 체, 귀엽게 봐주기로.
그래, 지금 이 상황에 수학 숙제가 뭐가 중요하니? vs 혹시나 이걸 빌미로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버릇 나빠지면 안 되는데. 아이의 상태를 알게 된 뒤로 매번 비슷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한다.
엄청난 양의 달달구리를 섭취하고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너. 긴장한 마음을 감추고 태연한 척 툭 말을 건넸다.
"상담선생님이랑 이야기했지? 엄마한테도 연락하셨어. 그래서 이제 어디에서 상담받을지 알아보려고."
"근데 엄마, 왜 이제 이야기해? 안지 엄청 오래되지 않았어? 2주? 3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너.
"아닌데~ 일주일 전에 연락받았고,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해 보신다고 엄마한테 기다리라고 했거든. 근데 그럼 너는 왜 이야기 안 했는데?"
순간 당황하는 아이.
"음, 그건 말이지... 내가 이야기하면 엄마가 힘들고 막 울까 봐. 근데 엄마 연락받고 울었지?"
내가 울었을 거라 확신하는 아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엄마 멘털 강한 거 몰랐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엄마 멘털이 좀 갑이잖아!"
아이가 내가 울었길 바라는 건지, 아닌 건지 당최 감이 오질 않는 나는 일단 발뺌을 했다. 담임선생님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엉엉 울어서 닦아낸 휴지가 한 움큼이었는데...
"아닌데... 엄청 울었을 거 같은데~"
(안 울어서 서운한 건가? 앗차)
"실은 울었지~ 어떻게 안 울겠어. 엄마 딸이 그렇게 힘들었다는데~"
"아, 거짓말. 안 울었지?"
(아 놔, 이놈의 밀당. 늘 어렵기만 하다. 어쩌라는 거지)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다가 아이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애는 애인지, 처음에는 그 친구 이름은 절대 말할 수 없다더니, 이내 곧 "이건 OO이가 너무 한 거 아니야? 엄마도 알지 걔?"로 다 털어놓는 너.
힘들 때 말하지 못한 건 역시나 엄마가 힘들까 봐. 그리고 자기도 조금 그러다 말 줄 알았단다. 요즘도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음..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서 괜찮아. 아침에 눈 뜨면 엄마 있고, 학교 가면 친구들 있고, 집에 오면 가족들 있고, 또 엄마랑 같이 자니까."
괜찮다는 아이의 말은, 혼자 있을 땐 여전히 힘들다는 말로 들렸다. 평생 누군가와 늘 함께 있을 수는 없기에 아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하더니, "근데 또 막상 검사하고 상담받는다고 하니 좀 귀찮아~"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그냥 혼자 힘들고 말았는데, 이걸 끄집어내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앞으로의 과정들, 자세히는 몰라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걸까. 괜찮아. 엄마가 도와줄게.
한편으로는 '전엔 좀 그랬는데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나니까 이제 괜찮아'라고 해주었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는 역시나 나의 망상이라는 걸 확인했다.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내 딸이, 어떻게 나에게가 아니라, 그저 누구에게 아 불현듯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길을 걷다 넘어지거나, 교통사고처럼.
많이 힘들었겠다고 아이를 토닥거렸다. 그래도 조잘조잘 다 이야기 나누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가장 힘든 걸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서운하다고도 했다. 너는 엄마가 속상할까 봐 걱정했지만, 엄마는 혼자 힘들었을 네가 더 속상하다고. 다음에 혹시 비슷한 고민이 있을 때는 엄마한테 꼭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며.
며칠을 끙끙거리며 고민했던 커밍아웃을 무사히 마쳤다. 이렇게 털어놓으면 될 걸, 난 무얼 걱정했던 걸까. 내가 속상할까 봐 걱정했던 딸처럼, 괜스레 아이를 자극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나.
너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서로를 너무 아껴서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나 보다. 그게 진짜 서로를 위하는 길이 아닌데... E 같지만 I도 품고 있는 우리 모녀. 앞으로는 엄마가 조금 더 용기 내서 먼저 이야기할게. 지금이라도 먼저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