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순둥이 아기곰은 어디에 있을까

엄마도 최선을 다할께. 사랑해 내 딸.

by 나르샤

통실통실 귀여운 아기곰 같은 너.

동그란 얼굴에 배시시 잘 웃는, 처음 만난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지고. 가끔 혼이 나면 쌜쭉해서 방에 들어갔다가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문을 열고 나와 "안아줘~"를 외치며 얼굴을 비비는 너.


사고 싶은 굿즈가 그렇게 많은데도 용돈으로 기부를 하고, 유기견 소식을 들으면 마음 아파하고,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의 일인 것처럼 마음 아파하던 너. 같이 마트에 가면 떨어지거나 흐트러진 물건을 꼭 제자리에 바르게 정리하는 모습을 늘 대견해했었지. 보이는 것만 보는, 단순한 엄마는 그저 감수성이 풍부한, 마음이 여린 착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어.




학교 상담실의 전화 이후로 밤에 널 혼자 두고 싶지 않았어. 품에 꼭 안고 자야 너의 마음이 외롭지 않을 거 같아서. 혼자 우울한 생각의 늪에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늘 잠들기 전 조잘조잘 수다를 좋아하는 너. 늘 하던 이야기인데... 이제 너의 힘든 마음을 알아버린 엄마는 가슴이 철렁했단다.


"학교에 정말 가기 싫어. 다문화라고 반 모든 아이들이 따돌리고 괴롭히잖아. 그런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게 참을 수가 없어. 도대체 배우는 것도 없고, 어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들과 있어야 하는 학교에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


"걔는 친구도 없어. 쉬는 시간에도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혼자 떠돌아."


"오늘은 걔가 교실에 들어오는 걸 보고, OO가 벌레라고 했어. 너무 화가 나서 선 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것밖에 해줄 수가 없어서 속상해."


그전까지 꽁꽁 감춰놓았을 너의 마음. 정서 검사를 통해 이제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여전히 나에게는 상담실에 다녀온 걸 이야기하지 않지만, 엄마도 은연중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서일까. 둥글둥글한 줄만 알았던 너의 마음은,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구나.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폭발해서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가 없는 상태.


친구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돕고 싶은 마음은 기특하지만.... 그게 너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 안 되는데. 아이는 이미 감정에 함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하다. 마음속 깊은 우울한 마음을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일상의 이야기를 내가 너무 확대해석하는 걸까? 한 번 놀라버린 나의 마음은 아이만큼이나 불안하게 이리저리 생각의 나래를 편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또 어떤 모임에서든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다고, 그럴 때는 그저 거리를 두고, 때로는 깊이 엮이지 않으려고 하면 된다는 어른의 해법을 말해주지만, 아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인다. 알겠다고 고개는 끄덕이지만, 여전히 화가 나고 속상한 너의 눈빛.


불의에 맞서려는 마음, 올곧고 싶은 마음,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을 알지만,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속 끓여 야한 이 상황이 아프구나. 공감은 소중한 감정이고, 장점이지만, 그게 과하면 너를 헤칠 수 있다는 걸. 때로는 적당히 둥글둥글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데. 그걸 어떻게 너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어제 아침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너. 설사가 심하다고 했다. 이제는 꾀병인지, 정말 아픈 건지, 아픈 마음이 복통으로 나타난 건지, 엄마도 혼란스럽기만 하구나. 그래도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봐야... 내 마음도, 아이도 힘들겠지. 아이에게는 진심으로 복통을 걱정하는 척, 속내를 감추고 병원에 갔다. 혹여나 장염을 걱정했지만, 역시 딱히 병명은 없다. 잠시 늦게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너는 연신 웃는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그러면 애 버릇만 나빠진다고, 맨날 아프다고 꾀병을 부린다 하겠지만. 반년 전의 일로 곪고 곪아 마음이 힘든 아이가, 한두 시간 더 쉬는 걸로 위안이 된다면 그저 해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다. 설사가 멎지 않아 좀 더 재우고, 인심 쓰는 김에 좀 더 쉬게 했다.


요 며칠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알던 아이의 모습이 도대체 어디까지 맞는 걸까 하는 의문. 부모라도 아이 마음을 백 퍼센트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확률상 그럴 거라 생각했던 게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길 바라지만, 혹여나 너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용하려는 걸까.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덜 힘들어진다면, 그래도 되지만...




아이는 하굣길이나 학원을 마치면 혼자 오는 길이 외롭다며 항상 나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 상태를 알게 된 후, 그전에 바쁘다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조금은 귀찮은 마음에 빨리 끊으려 했던 게 생각나 미안하고 힘들었었다.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 중 하나였을 수도 있는데... 이제는 아이 하교 시간에는 가능한 집에서 맞아주거나, 전화는 꼭 받으려고 한다.


어제는 방과 후 상담으로 알고 있는데.. 상담샘의 전화와 동시에 걸려온 아이의 전화. 아이 전화가 더 중요하니까. 묻지도 않았는데 지각으로 체육 수행 평가를 못해서, 그걸 하느라 20분 정도 늦게 끝났다고 했다. 그래? 그러면 상담을 오늘도 못한 건가...(월요일에서 수요일로 미뤄진 건데, 계속 늦어지니 마음이 조급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상담샘에게 연락이 왔다. 상담이 미뤄져서 연락 주신 건가 했는데, 어제 아이와 이야기를 했단다. 상담샘은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어제 이야기를 했다는데.... 그런데도 나에게 이야기하기가 멋쩍었던 걸까. 너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어리석은 엄마는 또 믿어버렸구나.


다행히도 아이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고,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단다. 외부 기관의 검사도 받고,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빠른 시일 내에 전문 기관 상담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불과 일주일. 일주일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그 사이 네가 혹여나 다른 어딘가로 튀어나가 지 않을까 불안했던 마음. 늦게 알아주어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되뇌며... 이제 네가 준비가 되었다면, 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엄마도 최선을 다 해볼게.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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