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정서행동특성검사가 몰고 온 마음 속 폭풍의 시작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시간.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리려는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광고겠거니 싶어 넘기려는데, 전날에도 왔던 번호다. 순간 놓칠세라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OO 중학교입니다. OOO 어머님이시죠?"
중년 남성. 아이 담임 선생님은 젊은 여자분이라고 했는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했던 정서행동 특성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단다. 전날 방과 후 아이와 먼저 상담을 했고, 그 후 나에게 연락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혹여나 학업 스트레스인가? 3월에 아이가 수포자의 기로에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도저히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처음으로 푸시를 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채 말을 듣기도 전에 그러지 말아야지 마음이 앞서가는데, 아이가 우울감이 있단다. 놀라지 말라며, 일주일에 한두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부모와의 애착관계는 잘 형성되어 있지만, 교우 관계 문제란다. 6학년 2학기 때 친했던 친구가 본인의 험담을 했고, 그게 마음 한 구석에 콕 박혀서 상처를 내고, 우울감이 된 듯하다고. 하필 그 친구는 지금도 같은 중학교란다.
정신없는 와중에 녹음 버튼을 눌렀다. 상담 선생님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네네 대답도 했다. 하지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딸이? 그렇게 밝고 명랑한 아이가? 조금 전에 엄마 사랑한다며 방긋 웃고 손 흔들며 학교에 간 아이가? 도대체 무슨 검사? 내 아이가 맞는 걸까?
이십 분 가까운 통화 후에 머릿속에 남은 건 단 두 단어. 우울과 죽고 싶다는 충동.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나는 당황스러울 뿐이지만, 아이는 긴 시간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아이라, 걱정을 끼칠까 봐 꽁꽁 싸매고 말하지 않은 거라는 말이 가슴을 후볐다.
그래도 울고만 있을 수 없다. 나는 엄마니까. 바로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방과 후에 뵙기로 했다. 상담 전까지 불과 몇 시간,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보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닐까. 아이는 마음이 여리고 순해서, 친구들과의 관계로 고민이 많았다. 마음 맞는 친구는 전학을 가거나, 이민을 갔다. 새로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쾌활한 듯 보이지만, 베스트 프렌드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며 외로워했다. 작년 그 맘 때 친구 이야기를 조잘거렸는데, 도대체 내가 무엇을 놓친 걸까.
혹여나 나의 암투병 때문에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걸까. 유독 날 걱정하며, 살뜰하게 챙겼던 아이인데. 자기 때문에 걱정하면 혹시 또 아플까 겁이 났던 걸까. 만일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이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했을까. 함께 있을 때면 항상 재잘거리며 온갖 소소한 이야기들을 해서 수다쟁이라고 놀렸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이야기는 왜 하지 못한 걸까.
바로 병원이나 심리센터를 알아보고 예약을 해야 할지. 청소년 우울증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지. 마음은 급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만나서 상황을 이해하는 수밖에. 불안한 마음으로 상담을 기다렸다.
담임 선생님, 위클래스 상담선생님과의 상담. 혹여나 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이가 실수로 체크한 건 아닐까. 문항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관심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기대. 1차 검사 결과 관심군으로 분류되어 재검사를 했지만, 2차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작년 10월 친구와의 트러블, 그때 바로 털어냈으면 괜찮았을 텐데. 혼자 마음에 감춰두고, 삭히다 보니 우울감으로 번져버린 것 같다고. 다행히 자해 시도는 없었단다. 굳이 다행히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실제로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 아이는 머뭇거리며 목에 두 손을 갖다 댔단다. 그 자그마하고 통통한 손을.
도대체 그 아이가 뭐라고 하고 다닌 걸까? 진짜로 내 아이의 험담을 한 걸까? 혹시 예민한 아이가 지레 짐작하고 상처받은 건 아닐까? 한 달도 아니고 6개월 전의 일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었던 건가.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듯한 억울한 상황. 왜 그게 내 아이여야 할까.
아이의 상태는 전문기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어렵게 내어 보인 마음을 너무 급히 다가서면 닫혀버릴 수 있기에. 1~2주간 아이를 구슬려서 좀 더 상태를 파악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엄마가 너무 걱정하고 속상해하면, 아이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절대 티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혹여나 눈물이 나도 혼자 울고, 아이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다만 어디로 튀어오를 지 모를 아이 상태는 잘 관찰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눈 마주치며, 밥 먹고, 이야기하고, 얼굴 보는 사이인데... 이미 사춘기로 눈치가 빤한 아이 앞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으려나.
아이는 알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실수(?)로 내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교 후에 전혀 티를 내지 않는 아이. 숨바꼭질 같은 감정의 밀당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웃으며 말했다.
"참, 엄마 오늘 담임샘 뵙고 왔는데~ 너 말대로 젊고 이쁘시더라! 엄마 간 거 몰랐어?"
순간 아주 잠시 흔들린 아이의 눈빛. 아이는 이내 쿨함을 가장하며 그러냐고 별 거 아닌 것처럼 대답했다. 내 눈에 보이는 귀여운 아이 안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구나. 티가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칠 때 사랑을 듬뿍 담아 '엄마는 다 알지~'하며 바라보았던 그때 그 눈빛이면 좋으련만...
한 통의 전화로 일상이, 아니 정확히는 나의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