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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르샤 Aug 27. 2023

백수 남편과 집안일 타협점 찾기

집안일 좀 해야하지 않니? 하고 있잖아! 어? 뭐라고?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태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결혼이라는 틀 속에 부부로 묶여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겠는가. 아무리 멀리 가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구조 자체가 그런 거다.

© bryanmgarces, 출처 Unsplash


다만, 단순히 남녀의 차이인지, 아니면 다소 별종인 남자를 만나서인지 항상 의문이긴 하다.

오늘의 이야기.



<배경 상황>

나는 2년 전 암치료를 마치고 약 1년 전 복직.

남편은 1년 전 회사 퇴직(현재 소소한 용돈벌이 및 사업 구상 중)


내가 가계를 책임지니 전업까지는 아니어도, 어지간한 집안일은 커버할 줄 알았는데 아이쿠야.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복직하고 가뜩이나 몸도 마음도 힘들다 보니 퇴근하고 청소하고, 음식 하고, 밥 차리고 빨래하다 보면 열불이 폭발한다.


물론 그도 놀지는 않는다. 하루종일 도서관에 가거나 커피숍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하다가 6시쯤 돌아와 밥을 하고 헬스를 갔다 7시에 귀가. 그의 퇴직을 윤허(형식은 윤허지만 실상은 협박)했을 때 가장 우려했던 내가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재테크도 하는 그 상황.


그가 회사 일을 안 한 지 일 년 반, 급여가 끊긴 지 일 년. 기약 없는 구상과 현실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나의 마음에 깔려있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분노가 폭발하여 마침내 격돌했다. 표현은 격돌이지만, 둘 다 화가 나면 침묵으로 일관하는 침묵의 전쟁이랄까. 그렇게 일주일간 침묵 후 대화를 시도했다.


<나의 입장>

날이 더워지니 암성 피로라 더더욱 힘들다. 잠도 줄일 수 없고, 그나마 잘 자지도 못한다.(후속 치료 부작용으로 인한 불면증). 자존감 따위는 내려놓고 10시간 회사에 잡혀있다 집에 와서 몸도 처지는데 음식하고 밥 차리려면 힘들다.

당신도 놀지 않는 거 알지만(그렇다고 무엇하는지도 모르겠다만), 집안일을 돕는 개념이 아닌, 메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메뉴 고민하고 음식 하는 거, 화장실 청소, 주중 바닥 정리 등...


VS <그의 입장>

도대체 내가 안 하는 게 뭐냐? 돈 못 번다고 무시하는 거냐?

(그럴 걸 알면서 무작정 퇴사를 한 거니?) 


애들 아침에 밥 먹여서 학교도 보낸다

(아침 거리는 내가 준비해 놓고, 애들은 커서 알아서 옷 입고 먹고 하는데?)


매끼 설거지 버겁다

(그릇 5개 씻는데 20분 걸리니 힘들지. 근데 그 뒤에 설거지 뒷정리, 음쓰 정리 내가 하는 건 알지?)


청소도 내가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로봇 청소기만 돌리는 게 다인데. 그것도 위는 일절 안 건드리고 바닥에 있는 거 다 위로 올려서 바닥만! 주중에 부직포 밀대로 이틀에 바닥청소, 곳곳에 쌓인 먼지, 묵은 짐 정리는 내가 하는데?)


너한테 욕먹을까 봐 밥도 내가 한다. 요리까지 하기에는 너무 바쁘고 효율 떨어진다.

(전기밥솥으로 밥'만' 해놓는 거? 밥은 김치랑만 먹는 거니? 김치는 하늘에서 떨어지니? 응?)


화장실 청소는 필요하면 얘기를 해라.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다 하마.

(의문의 1패 느낌 무엇. 15년 살면서 화장실 청소 손에 꼽을 만큼 했고, 그나마도 세면대, 변기만 엉성하게 했더라는..)


그의 결론. 차라리 전업이라면 쉬면서 편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그게 아니지 않은가. 사업 구상 및 공부로 바쁘고, (병력 때문에) 운동도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맨날 화난 얼굴로 무시하듯 하지 마라.




결국 대격돌(?)에도 불구하고 집안일 바통 넘기기는 실패했지만, 서로 확실한 관점의 차이를 깨달은 것에 의의를 둔다.


내가 보는 그는,

40대 후반의 기술이 없는(사무직 경력의), 게으르고 야무지지 못하고 현실감이 없는 백수 아저씨.(감정을 좀 더 실으면 병력 있는 와이프에게 얹혀사는.... 큭). 즉 애들 보내고 낮에 4~5시간 하고 싶은 거 하고, 전업은 아니어도 반업 느낌으로 살림을 좀 맡아주는 게 합리적이다.


그가 보는 그는,

몇 년 안에 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이 있고(자기 계발서의 잘못된 뿜뿜으로 그는 백 퍼센트 확신한다), 그 꿈을 펼치기 위해 잠시 준비의 시간을 갖는 예비 1인 지식 창업가. 즉 비록 지금은 돈을 못 벌지만,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 거니 집안일은 공동으로 하는 게 합리적이다.(그리고 지금도 내가 너보다 많이 하고 있다!)


아~ 글로 쓰고 보니 명확하다. 결국 서로의 기준점과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없다. 설상가상 그는 스스로의 상황과 본인의 모습에 대한 메타인지가 전혀 되지 않는다.


다만 예전보다 집안일을 많이 한다는 그의 주장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 이전에는 맞벌이였음에도 비중이 아주 미미했다는 뜻이지만.


아침은 내가 챙겨줄 수 없으니 그가 대신하고 있고, 저녁에도 회식이나 약속이 있으면 그가 돌보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잠시 나의 힘듦에 빠져 놓쳤던 부분이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매일 부딪힌 건 아니다. 다만 나도 에너지가 바닥나고 힘들어서 퇴근했을 때, 그도 피곤한데 하필 집에 저녁거리가 없을 때. 그때가 갈등의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관점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렇게 아다리가 안 맞아 펑크 나는 공간을 막아야겠다. 일단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나름 양질의 음식들을 쟁여야겠다. 피곤하고 힘든 날은 퇴근 전에 미리 알람(문자)을 띄우기로. 임시방편이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또 방법이 찾아지겠지.


좌우지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갑자기 여기서 왜 이 책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가 회사에 사표를 던지던 순간 상상했던, 그 불길한 느낌적인 느낌이 지금 나의 앞에 펼쳐지고 있다. 미리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혹여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대박을 쳐서 호강을 시켜주는 버젼비중이 작지만 있기는하니. 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루어질 순간을 고대해 본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나니 <시크릿> (기왕 이상하게 간 거 이것도 얹기)

책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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