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백수 남편, 무한 잠재력의 뮤즈라 해야 하나?
"그래서 넌 언제까지 일할 건데~~?"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살다가, 이제 독일로 갈 예정이라며 잠시 한국에 들른 고등학교 동창. 오랜만에 연락이 온 그녀의 질문.
순간 당황했다.
"놀면 뭐 해. 집에서 삼시세끼 밥 하기도 힘들어"
농담처럼 웃어넘겼지만 말을 채 마치기 전에 깨달았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걸. 손이 새하얀 그와 갈수록 생활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초중딩 아이들. 지금처럼 필요한 것만 아끼며 살아도 최저 생계비는 필요하다.
그가 백수가 되고, 내도록 월급 외에 현금흐름을 만들 파이프라인을 고민했지만 아직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으면 다들 부자 됐겠지. 여하튼 빼박 생계를 위해 기약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위에 등장한 친구는 왜인지 모르지만 학교 때부터 날 참 좋아했다. 그 따뜻한 마음 덕에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이다.
이방인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 (물론 친구들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겠지만) 돌이켜보니 소위 잘 사는, 잘 나가는 집안의 아이들 틈에서 나는 가난한 집안의, 공부 못하는 아이였다. 어쩌다 보니 특목고에 갔고, 전교에서 손가락을 꼽던 등수는 반에서도 뒤에서 세는 수준이 되었다.
밤 10시 야간 자율학습 후에 기다리던 부모님의 차를 타고 과외를 받고, 방학 때마다 별도로 초빙한 유명 과외 샘의 그룹 과외는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비싼 스쿨버스 대신 시내버스를 탔고, 사설 독서실 비용이 아까워 공공 도서관에 다녔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고, 마지막 학기는 성적 장학금까지 받았다. 수능 성적이 평소만큼 나오지 않아 원하던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쓰다 보니 그냥 그렇다는 거다)
당시 주재원 아빠를 둔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영어도 중국어도 잘하면서,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가다니.
'저런 삶도 있구나'
지금은 주재원의 처우와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도 이해하지만, 그때는 내가 가질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은 불편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다만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아빠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결혼을 하지 않겠노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또 사는 게 어찌어찌하다 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나의 아이들에게 해외살이 경험과 외국어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가난으로 이어지지 못한 가방끈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순진하게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회사의 대학원 과정은 없던 면접까지 급조해서(뇌피셜이지만) 물을 먹었다. 주재원은 외국어 한 마디 못하는 남자를 가르쳐서 보낼지언정 여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진작에 안된다고 말을 하든가. 될 줄 알고 달리다가 들러리만 섰던 시간들.
혹여나 이 자(=남편)가 꿈을 대신 이루어주려나. 나도 주재 사모님이 되어 가사도우미를 쓰고, 골프도 치려나 기대했건만... 아뿔싸, 주재원은커녕 백수가 되어 소파에 드러누워 손가락을 열심히 놀려가며 포켓몬을 잡고 있다.
아 놔. 그의 이야기만 나오면 파블로프 개실험에 나오는 강아지 마냥 무조건 반사로 열불이 나니 큰일이다.
여하튼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면...
친구 아버지는 대기업 입원으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그 뒤로도 꽤 오랜 기간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살림은 소질이 없으셨지만(친구의 말로는), 재테크에 감이 있으셨는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부동산으로 열심히 불리셨다. 그 결과 지금은 모두가 선망해하는 그곳, 대치동에 사신다. 외동딸이라 그녀도, 그녀의 아이도 살뜰히 챙김을 받는다.
친구는 졸업 후 여대를 갔고, 사내커플로 남편을 만났다. 남편도 넉넉한 집안의 집안의 둘째. (원래 끼리끼리 만나는 건가?? 음 나도 회사에서 만났는데..) 가정적이고 다정하다더니만 능력도 좋은지, 미국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독일로 간단다. 친구는 미국에 가면서 퇴사를 했고, 즐겁게 잘 지냈단다.
쓰고 보니 부럽다. 에잇.
'여자 팔자는 뒤웅박'이라는 말을 극혐 했는데, 속담은 대체로 깊은 지혜를 품고 있나 보다. 왜 그렇게 부모들의 딸이 혼사를 그렇게 따지는지도 이해가 된다. 물론 고른다고 꼭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확률상, 경험상 더 좋은 선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려니.
이 타임에 나도 모르게 불쑥 드는 생각.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참 열심히 살았는데. 공부도, 일도, 가정도, 육아도. 마흔 초반. 손에 잡히는 것도, 이룬 것도 없는 느낌.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부동산 매물과 지도를 찾고, 전화를 하다가 현타가 온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엉? 왜 갑자기 자기 계발 분위기)
여하튼 회사 돈으로 외국살이에 대한 환상은 진즉에 훠이훠이. 이제는 기약 없는 월급쟁이 가장으로서의 삶이 주어졌다. 그래도 노동 강도 대비 소득에 감사해야지. 자존감은 꽁꽁 싸서 안 보이는 곳에 감춰두어야 상처를 안 받긴 하지만.
조만간 무인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할 수도 있다. 어쩌면 고시텔을 창업할 수도 있다. 혹은 뜬금없이 경공매에 뛰어드는 모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요 근래 비 오는 날 머리 꽃 꽂고 다니는 여자 뺨치게 마음이 팔랑 거린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에서의 시간, 가장으로서의 무게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의 결과물이리라. 쓰고 보니 주변 50대 전후반 외벌이 남자 선배들의 고민과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지금의 So strong 한 내 모습의 탄생에 상당 지분을 갖고 있는 그. 나를 키운 건 8할이 그대였소.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내주어 눈물 나게 고맙소! 아~ 이제야 깨닫는 속담의 참뜻. 그래서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인가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40대 외벌이 워킹맘의 삶을 살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저 그런 평온하고 뻔한 미래가 아니어서, 감사하고 설레고 기대된다.
고맙다 백수 남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