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르샤 Nov 30. 2023

남편은 없다 치고, 그냥 살아!

멀고 먼 수행의 길, 내일도 법륜스님의 말씀을 들어야겠다.

10월초 글 이후, 그를 백수에서 강제로 추방(?) 시켰다. 보다 정확히는 집에만 틀어박혀 언제부턴가 나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까지 히스테리를 부리는 그를 보며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다. 투자금을 다 날리더라도 아이들의 정서상 짜증 진상 아빠 이미지는 아니라는 판단하에, 소규모지만 나름 '사장님'을 만들어주었다.


집에서 끄집어내고, 나와 아이들과 분리(?)의 시간이 생기면서 온집안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고 작전은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온실 속 월급쟁이도 힘들다고 뛰쳐나온 마당에 자영업이 만만할리 없다. '사장님' 놀이에 즐거워보이더니만, 24시간 촉을 세우고,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진상들과 전쟁을 치루는 자영업자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여튼 그런 이유로 기능적(돈을 벌거나 살림을 하거나)으로도 정서적(따뜻한 위로나 진심을 담은 미안함)으로도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로 인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소위 꼴도 보기 싫은 상태. 심지어 보이지 않을 때도 그에 대한 원망과 책망, 분노가 마음 가득 차올랐다. 하는 짓은 여전히(아마 앞으로도) 어설프고, 여기저기 아프고 피곤하다는 말은 달고 살고, 이렇게 밉상일 수가.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 싶었다. 암 진단 후 힘든 치료를 마친 뒤 어느 날,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혹여나 병이 재발한다면, 그건 그의 탓일 거라고. 그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너와 헤어지는 거라고 결심한 게 떠올랐다. 나를 지켜야한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가장의 의무도 벗어던지고 사는 사람에 비해, 내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3자의 입으로 듣고 싶어 점을 보기도 했다. 


"남편 복은 애초에 없다. 그래도 애들이 잘할 거니 없다 치고 너가 벌어먹고 살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쾌하게 말을 건네는 점사. 본인도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다니는 남자라서 결혼했는데 금새 때려치더니 10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그래. 어차피 그가 있든 없든 나는 무언가를 해야하는 성격인 걸 스스로도 안다. 억울했던 마음은 나처럼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진취적인 삶을 사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으로 달래졌다. 




홧병의 경계수위를 오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했다. 스님 말씀 안에 인생 진리가 있다고. 오늘 아침 출근길,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고민하는 신도의 사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억지로 결혼한거 아니고, 당신이 골라서 했으니, 상대방을 좋게 생각해야 당신이 좋은 사람을 고른거고, 반대로 나쁘게 보면 당신이 나쁜 사람을 고른거잖아. 이쁘게 보고 좋게 봐줘라."

"기대치가 높아서 서운한 거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서운할 일이 없지 않은가. 너무 많이 바라지 않으면 관계는 나아진다"


그래, 비록 내 손가락으로 내 눈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천번씩 들지만, 맞는 말이다. 비록 사랑의 정열로 불꽃튄 게 아니라, 시어머니의 올가미(?)에 불쑥 결혼날을 잡았지만, 내가 싫었으면 안해도 되었을 거니.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회사의 임원 인사 발표날. 이미 회사는 '1인분 존버'로 방향을 잡았기에 딱히 큰 의미가 없었건만, 보지 말아야할 것을 봐버렸다. 회사 여직원들의 게시판에 오른 화제의 글.


1) 사내 부부인데 남편이 임원이 되었어요. 일도 열심이고, 바쁘지만 가정적이고 아이들에게도 잘해요.

2)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다른 대기업 임원인데, CEO로 이직 제의를 받았는데 어쩌죠?


아아..... 아침 내내 노력하여 찾은 평정심으로 진심어린 축하를 날려주어야 하건만 수행의 길은 멀고 험하다. 한 번 보고 닫아버려야하는데 계속 읽고 또 읽힌다. 능력도 좋은데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렇게 자상하다고? 아~~ 베알이 뒤틀린다. 


뭘하든 300만원만 가져다 달라고, 아니면 그보다 적어도 좋으니 직장을 다니라는 최소 요구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그와 대조된다. 심지어 집에 두었더니 애들한테 골질이나 하고 아놔....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라더니. 그래도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지 않은가. 하필 지금 이런 상황의 내 눈에 띄다니. 마음이 이렇다보니 저런 행복에 쩔어 복에 겨운 멘트는 화살이 되고, 쓰라린 상처가 된다  


누구는 저 나이에 임원도 하고, 대표도 하고,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지 처자식은 건사하며 살아가는데.. 도대체 당신은 정체가 뭐니? 애초에 가능성이 없는 그에게 기대를 한 내가 바보 같아서, 그런데도 헌신하고 양보했던 마음과 노력과 시간이 안타깝다. 


저 여자들은 도대체 무슨 복에... 나보다 공부를 잘했으려나, 심성이 고운건가, 이도저도 아니면 절세 미인이려나. 무수히 애썼지만, 떨쳐버리지 못하고, 한 번씩 불쑥 떠오르는 생각.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알고 있다. 나도, 그도 잘못한 건 없다는 걸. 이렇게 날을 세워가며 뒷담화를 하지만, 그냥 그는 그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산 거다. 다만 그게 부부라는 연으로 얽히다보니, 한 쪽의 선택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준 것 뿐. 서로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온거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연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인연으로 소중한 아이들을 얻었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중요시한 한거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가정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어쩌면 그도 나에게 서운하고 화난 게 많을 테지.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다음 달이면 2년. 원체 단순한 성격이라 생각이 깊지 않은데, 타인에 대해 이렇게 깊이, 다방면에서, 오랜 기간 관찰하고 고민을 하다니... 그래도 글을 쓸 수 있어서 고맙다. 글을 쓰면서 울그락 불그락 찌그러졌던 마음이 달래졌다. 토닥토닥, 열심히 잘해왔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한 번씩 잠시 흔들리지만, 

나는 꿋꿋이 단단한 엄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그 때까지. 

이전 02화 '여자 팔자는 뒤웅박'이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