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물에 젖어 우글쭈글해진 수첩에서 휘갈겨 쓴 글을 발견했다. 8월에 썼던 글. 당시 그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는지 손 아픔을 무릅쓰고 무려 3장을 썼다. 읽어보니 꽤 재밌다. 그때의 에피소드도, 사고의 흐름도. 올해 8월이니 글을 쓸 당시에 그는 백수였다. 그대로 옮겨 보는 4개월 전 이야기.
나에게 고3 아들이 있었나? 아들이면 자식이니 귀엽기라도 하겠건만.
그의 일상은 도서관, 운동, 여유로운 저녁식사.
나의 일상은 새벽 출근, 퇴근 후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애 씻기고, 빨래 돌리고... 등등등 만 가지
그냥 내 몫이라 생각하고,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려고 하지만 지친다. 차라리 눈에 안 보이면...
그와 살면서 힘든 건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부분이다. 낮은 에너지 수위. 무기력. 항상 기가 그에게로 빨려가는 느낌이다. 나의 에너지 레벨은 보통 여자들의 평균 대비 최소 두 배이상, 소위 하이퍼다. 다만 육아, 일, 살림, 병력 등 소진처가 무궁무진한데, 거대한 빨대가 깊숙이 박힌 느낌.
오늘따라 유난히 잡일이 많다. 반찬통 정리가 보태진 설거지. 이틀마다 빨래(여름이니까), 에어컨 필터 청소 알람 메시지, 손빨래, 정리되지 않은 재활용품, 3일째 걷어들이지 않은 앞 베란다에 널린 빨래. 전부 프리패스하고 딱 하나, 에어컨 필터 청소를 그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일 도서관 가야 하는데."
뭐? 그래서 어쩌라고? 노벨상 받으려고 연구중이니? 그게 한 시간이 걸리니? 나는 새벽에 출근하고, 하루종일 에어컨을 사용하는 건 당신이잖아. 켜는 동안에는 세척을 할 수 없고. 목구멍까지 솟구치는 분을 삭이고 가기 전에 하랬더니 한참을 뒤적거린다.
"청소하는 법 알아?"
대답하지 않고 네이버에 검색했다. '삼성 에어컨 극세필터 청소' 입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동완성기능으로 검색이 되었다. 첫 화면에 친절한 설명과 동영상까지. 앓느니 죽지...
얼마 전부터 덜렁거려서 신경이 쓰이는 식탁 다리. 그에게 말하려다 관뒀다. 십 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혹여나 이야기를 하면 분명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펼쳐질 거니까.
1) 어디가 이상한데?
(이 흔들거림이 느껴지지 않니?)
2)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응? 흔들리니까 나사를 조여야 되지 않겠니?)
3) 나사가 어딨는데?
(식탁 상판과 다리가 만나는 접합부위. 이렇게 세밀한 묘사가 필요한 거니? 월리를 찾아라도 아니고)
4) 뭘로 조이는데?
(생각을 좀 해봐... 뭘로 조여야겠어? 손으로 해보고 안되면 드라이버?)
5) 드라이버는 어디에 있는데?
됐다. 이 정도면 하기 싫은 고의성이 의심된다. 입이 아파서 그냥 내가 하고 만다. 다만 이런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라 열개, 백 개, 만개라는 게 문제지만.
퇴근 후 지친 몸을 끌고 밥을 차렸으니, 설거지는 시키고 싶지만. 열나절 느지막이 먹는 그. 그릇 하나에 십 분씩 씻고 나면 한참 늦은 저녁에 내가 다시 개수대를 정리하고, 음식물을 담고 치워야 한다. 아, 이것도 이미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기억 저장 기능이 없는지, 항상 똑같다. 싱크대 여기저기 음식물 찌꺼기와 개수대에 담긴 설거지물 등. 그는 이미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데, 싱크대는 도무지 설거지를 하기 전인지, 중인지, 후인지 알 수 없는 상태.
쓰면 쓸수록 깊은 패배감이 느껴진다. 그래, You win!
내 인생의 영구 미제.
너의 췌장이 아니라 뇌구조를 먹고 싶어!
어쩌면 이렇게 4개월이 지난 지금과 똑같은지.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변하지 않는다. 50살 가까이 사람이 변하면 그건 오히려 이상한 징조다.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가 문제였던 거다.
요즘 법륜스님의 영상을 즐겨본다. 부부관계로 고민하는 신도에게 일침을 날리신다.
"누가 등 떠밀어 결혼했나? 한때는 좋다고, 당신이 좋아서 한 결혼 아닌가? 지금도 갈라서고 싶으면 갈라서면 되지, 그래도 같이 사는 걸 본인이 선택한 거 아닌가? 스스로 생각도 바꾸기가 힘든데, 남을 어떻게 바꿀라고 그래. 내 마음을 바꿔야지."
네, 스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모든 게 제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제 살길을 찾겠습니다. 큰 가르침 감사합니다. 오늘도 수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백수 남편과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