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여도 식사는 우아하고 여유 있게!
일반적인 남자들과 다르게 그는 음식을 매우 천천히 먹는다. 회사 선배였던 그와 지금의 부부로서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대졸 여사원은 나 하나뿐인, 남정네들로 그득했던 사무실. 당최 밥을 마시는 건지, 쏟아붓는 건지 모를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 모두 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구름과자를 먹으러 갔다. 초반에는 눈치가 보여 조금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놨지만, 오후가 되면 배가 고팠다. 나도 먹고살자고 일하는 건데 배가 고프니 서러웠다.
그러던 차에 어느 순간부터 테이블에는 그와 나만 남게 되었다. 다른 선배들은 먼저 먹고 일어난다는 죄책감을 덜었고, 우리는 편하게 밥을 먹는 윈윈. 그와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놈의 밥이 뭔지. 인연의 시작이었으나 지금은 주요한 분노의 트리거이기도 하다. 매일 세 번 먹는 걸 보게 되니까. (아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코로나와 병가로 삼시 세 끼가 이어질 때는 정말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무언가를 천천히 먹는 것뿐 아니라 식사에 대해 나름의 소신과 집착이 있다.
1) 하루에 세끼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 휴일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점을 먹으면 점저, 2번으로 마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거늘. 마치 오늘 못 먹은 한 끼가 죽을 때까지 한이 되는 듯, '반드시' 하루 세 번 밥 먹기를 고수했다.
2) 식사 시간은 본인이 배고픈 때이다. 이 무슨 말인고 하니 본인이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적당한 밥시간이 되었든,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도 밥 먹기를 영 내켜하지 않는다. 배가 덜 고프면 적게 먹으면 되지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가령 일요일 저녁은 좀 일찍 먹고 치워야 나도 좀 쉬고 다음날 출근을 할 텐데, 본인이 배가 고프지 않으면 늦게 먹자고 한다. 아 물론 대부분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혹은 그러면 적게 먹으라고 갈구고 식사를 하긴 하지만.
3) 이틀 연속 같은 식재료를 꺼려한다.(가령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 어제는 치킨, 오늘은 닭갈비면 내 기준에는 다른 음식인데 왜 그게 같은 거지? 물론 겹치지 않고 다양한 식재료를 날마다 먹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보다 항상 더 바쁜 나에게 이것까지 요구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4) 음식을 먹을 때는 나름의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가령 전/튀김/만두를 먹을 때는 간장이, 순대에는 소금이, 떡국에는 꾸미(떡국 위에 얹는 고기 고명)가, 어묵국에는 고춧가루가 있어야 했다. 이미 간이 되어 있어도 예외는 없다. 좀 더 맛있게 먹고자 하는 마음은 안다. 다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가 밥을 차려놓으면 무언가 하나 빠졌다는 표정으로 주방을 어슬렁 거리는 모습에 화가 날 뿐.
여하튼 다시 본론인 그의 식사 속도로 돌아오면, 결혼 생활에서 많이 힘들고 서운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인생의 전환점은 결혼이 아니라 출산이었고, 첫째가 태어난 뒤 하루하루 기쁨도 있었지만 몸은 힘들었다. 특히 상위 1퍼센트를 자부할 만큼 예민했던 아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새벽이나 돼야 잠이 들었다. 아토피가 심해서 가려 먹어야 했고, 저도 힘이 든 지 울음이 많았다.
보통은 남편이 후다닥 먹고 애를 돌봐야 부인이 밥을 먹으련만. 찡찡거리는 애와 눈치 주는 남편 옆에서 정신없이 한 술 뜨고 애를 받았다. 본인이 늦게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인지 그의 식사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애가 보채도, 내가 옆에서 끙끙거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눈앞에 펼쳐진 식사니까. 아, 처음에는 그가 금방 먹을 줄 알고 먼저 먹게 했었다. 열불이 나서 복장이 터질 뻔한 뒤로는 그냥 내가 먼저 먹었다. 그렇게 몇 번 한 뒤로 아예 외식을 하지 않았다. 나만 고생하는 게 억울해서. 도대체 군대는 어떻게 다녀온 걸까. 분명 다녀온 건 맞는데 굶고 살았던 걸까?
그는 백수가 된 뒤에도 여전히 만찬을 즐긴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신념을 가진 건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인지. 식사 중에는 항상 애정하는 BBC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는다. 아이들과 먼저 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의 즐거운 식사는 계속된다. 나는 얼른 치워야 씻고 출근 준비를 하니 마음이 급하다. 저녁 설거지 양이 많아 시간이 좀 걸리는데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 되겠다 싶어 장갑을 벗을 무렵, 다 먹은 밥그릇을 들고 어슬렁 나타난다. 바통 터치를 하고 싶지만, 그릇 두 개 설거지에 개수대가 오방난쟁이 될 걸 알기에 나의 몫이 된다.
그가 저녁에 치킨을 사 왔다. 아들과 나란히 앉아서 치킨을 먹는다. 바사삭바사삭, 양손에 기름과 양념을 범벅을 해서 맛있게 치킨을 뜯어먹는 그. 큰일이다 치킨 씹어먹는 소리조차 거슬린다. 주문을 잘못해서 양이 적다더니 먹는 내내 애한테 '양이 부족하지 않냐고' 강요한다. 급기야 굳이 괜찮다는 애를 붙잡고 사발면을 먹잔다. 아들은 벌써 다 먹고 씻으러 갔지만 그의 만찬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호로록 국수 국물을 마시고, 와그작 김치를 씹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그. 사람 먹는 건 미워하면 안 된다지만, 이보다 더 밉상일 수 없다. 남들은 나이 들수록 소화력이 떨어져 양도 준다는데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가. 본인 말로는 양이 줄었다는데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대식가다. 식탁 여기저기 떨어진 치킨 가루, 주방 가득 찬 김치와 쌀국수 냄새. 한편에서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BBC 방송에서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온다. 그에게는 퍼펙트한 크리스마스 식사이려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나의 남편이고, 평화로운 가정이 행복하다는 아름다운 결론이면 좋으련만. 요즘 나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와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독립을 할 거고, 그때도 여전히 혼자만의 여유로운 만찬을 즐길 그. 그의 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나. 오 마이 갓. 그와 노년의 삶을 함께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풍경 중 하나이다. 그냥 일단은 너무 길게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살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