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가 요즘 챗GPT에 흠뻑 빠졌다. 이건 신세계라며 몇 번의 검색을 해보더니 대번에 유료 결제까지 했다. 자발적 백수 남편을 둔 아줌마 가장으로 몸도 마음도 골머리를 썩는 상황을 아는 언니가 보내준 선물
질문) 남편의 무직으로 인해 아내가 가장일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려줘
챗GPT 답변)
남편의 무직으로 인해 아내가 가장일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다양하며, 상황과 가족의 동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일반적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와 대처 방법 몇 가지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1. 재정적인 어려움
- 남편의 무직으로 가계 수입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생활비와 빌지 않은 빚, 저축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대처 방법 : 가계 예산을 재조정하고 필수 지출에 우선순위를 두세요. 필요하다면 지출을 최소화하고 생활비를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세요. 금융 전문가와 상담하여 재정 관리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역시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은 수입의 감소. 맞다. 챗GPT도 이 정도는 단숨에 맞힐 수 있다. 원래도 맞벌이라고 많이 쓰진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절약하는 습관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외벌이가 되도 이미 홀쭉한 지출을 쥐어짤 구석이 별로 없었고, 결국 저축이 줄었다.
2년간 빡세게 모으고 굴려서 같이 파이어하기로 해놓고 홀라당 그만둔 그. 10년 전 사내 커플이었지만 좋은 회사니 너는 오래오래 다니라고, 자기는 꿈을 찾아 떠난다고 퇴사를 했는데. 나름 괜찮은 회사고, 주위 동료 대부분이 외벌이 남자들이니 당장 생계가 어렵다면 억지이긴 하다. 다만 심리적으로 수입이 주니 돈을 쓸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본능적으로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차오르는 악순환.
퇴사에 대한 그의 결심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돈으로 인한 선택의 제약들. 더불어 암 진단 뒤 깨닫게 된 찾고 싶은, 해보고 싶은 삶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책망. 이런 상황에서 본인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며 도리어 역정을 내는 모습.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불행의 많은 부분을 막아준 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입이 줄고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한동안 마음이 갑갑했다. 초딩, 중딩 두 아이는 착하게도 아직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심성도 착하다. 다만 이 아이들이 커서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돈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거창하게 꿈을 지원해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먹고 입히고, 어느 정도의 교육을 시킬 수 있을지. 경제적인 문제는 그의 퇴사 직후에도, 이미 1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2. 감정적인 스트레스
- 남편의 무직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 대처 방법: 상호 간에 소통을 잘 유지하고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지지해 주세요.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찾아 함께 실천하며 감정을 조절해 보세요.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그의 재택근무. 안방은 홈오피스로 그의 독차지가 되었다. 책상 위에 뽀얗게 쌓이는 먼지만큼 갑갑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병가 휴직에 들어갔다. 재택근무를 하는 그,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아이들, 병가인 나. 이렇게 네 가족이 한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함께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병을 돌보려고 집에 있는 건지, 세 명의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의 밥시중과 살림을 위해 집에 있는 건지. 서운하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사적인 모임이나 약속이 거의 없었기에, 더욱 집퉁이가 되었다. 그렇게 2년. 그나마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사회와의 끈인 직장을 그만두었다. 친구 등 외부와의 교류는 전무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이런 그를 이해하고 보듬지 못하는 나에 대한 원망, 모든 감정이 뒤섞였는지 그는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설마 했건만 최후의 보루인 아이들에게까지 그 불똥이 튀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아빠가 요즘 짜증이 늘었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꼬아서 들었다. 내 딴에 위로라고 건넨 말들이 비웃음과 자조로 반사되었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남편이 돈을 못 번다고 무시하는 나쁜 배우자가 되었다. 상황이 그런지라 본인도 힘든가 보다 하면서도, 나는 또 무슨 죄인가. 아들도 아니고 자발적 백수 남편을 돌보면서, 중증환자인 내 몸 챙기면서, 돈도 벌면서, 집안 살림에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만일 그가 구조조정이나 회사가 망하는 등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거라면, 챗GPT의 가이드를 잘 실천해 볼 수 있었으려나. 그는 본인의 자발적인 퇴사를 걱정을 끼친다는 이유로 부모님, 아이들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대화와 소통, 이해와 배려, 머릿속에는 가득했지만, 실천은 쉽지 않았다.
3. 자아 존중감 감소
- 남편의 무직으로 인해 아내가 가장일 때 자아 존중감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 대처 방법: 아내에게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역할을 강조해 주고 격려해 주세요. 그녀의 노력과 기여를 인정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세요.
2번까지는 누구라도 생각할 있는 건데, 이번에는 답변이 신선하다. 사람도 아니고 AI가 이런 신박한 생각을 하다니.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자아존중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퇴직을 대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상황과 감정들.
부서의 대다수인 남자 동료들을 볼 때면,
'학력이 좋지 않아도, 키가 작아도, 인물이 잘나지 않아도, 저 사람들은 처자식 건사하겠다고 저렇게 버티고 애쓰는데. 적어도 자기 식구들은 먹여 살리는데' 원망이 들다가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은 오죽할까' 안쓰럽기도 했다.
여자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볼 때면,
'누구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저렇게 편하고 즐겁게 사는데, 난 무슨 죄를 지은 건가'
'누구는 돈 잘 버는 와이프에 며느리라 대접받으며 떵떵거리고 사는데, 내 삶은 왜 이렇게 팍팍한가' 한탄과 분노가 교차했다.
무엇보다 사내커플이었던 그와 나. 그의 안부를 물어오는 오랜 동료들을 대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마음. 차마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지금은 백수로 지내고 있다고(그는 무언가 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명백한 백수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명문대 나왔다고 저 잘난 맛에 살더니, 결국 마누라가 먹여 살리는 구만~' 내지는 '그렇게 괄괄하게 굴더니만 신랑은 결국 별수 없고만~'이라는 가십거리에 휩싸이고 싶지 않았다. 하필 그의 전 직장에는 나의 예전 상사가 있었고, 아마도 암암리에 소문이 났으리라. 힘들다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안주거리 마냥 씹어댈 사람들이 눈에 선했다.
애 둘 낳고, 시간에 치여가면서 워킹맘으로 치열하게 살았을 뿐인데. 이제 남편은 백수이고, 나는 중증환자로 네 식구의 가장이 된 현실. 지나온 삶과 현재의 상황에서 오는 자괴감으로 괴로웠고, 그와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도 잦아졌다. '돈 번다고 유세하냐' 혹은 '돈 못 번다고 무시하냐'라는 듯한 그의 태도와 마주할 때마다 그나마 붙잡고 있던 자존심의 끝자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백수 남편들이여! 당신들도 힘든 부분들이 있겠지만, 부디 집안의 가장으로 당신을 부양하고 있는 아내들에게 고마움과 인정, 배려를 보여주기를~
챗GPT는 이 세 가지 만으로도 훌륭한데, 무려 세 가지의 답을 더 제시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 To be continued (Ep#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