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돈 벌게 하는 방법도 알려주련?
오랜만에 이어가는 두 번째 에피소드. (웬만한 사람보다 나은) 챗GPT가 알려주는 백수 남편 부인의 마음.
- 남편의 무직으로 인해 아내가 집안일과 외부 일을 모두 해야 하는 경우, 가사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 대처 방법: 가사 업무를 공동으로 나누는 계획을 세워보세요. 가족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력을 유도하여 부담을 분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책 없는 퇴직에 따르는 대가, 역할의 변화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의 외벌이 남편과 전업주부의 조합처럼. 바통 터치하듯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복직을 했다. 암치료가 헤집고 간 몸. 심적인 부담은 논외로 하고, 체력이 모자랐다. 추운 겨울 이른 아침 출근, 암경험자로 마치 이방인 같은 시간. 미처 퇴근 전에 체력은 방전됐고, 집에 오면 쓰러져 눕고만 싶었다.
그는 안다고 했었다. 자기 딴에는 자존심을 내려놓은 거지만, 그 정도로 회사가 싫었던 걸까. 다만 안다고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동안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매일 캐오스가 펼쳐졌다. 참고로 집안일에 대한 나의 기준은 절대 높지 않다. 그렇게 깔끔한 성격도, 야무지지도 못하기에.
출근 전 적당히 정리를 해두었건만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마루, 나의 눈에는 보이고 그에게는 안 보이는 먼지와 머리카락, 볶음밥을 해 먹었을 뿐인데 초토화된 주방, 설거지를 했다고 하는데 안 한 것과 흡사한 싱크대, 배수구에서 썩어가는 음식물과 악취, 터져가는 쓰레기통, 바구니 하나 가득한 밀린 빨래(그는 매번 세탁기 사용법을 묻지만 하지는 않는다. 표준 코스 - 세탁 시작이 그렇게 어려운가?). 밤 9시 넘어 아이들 준비물 때문에 문방구로, 마트로 뛰는 일상. 아기새가 어미새를 기다리듯 나의 퇴근, 아니 저녁밥을 기다리는 그와 아이들. 회사에서는 집에 가고 싶고, 집에서는 회사에 가고 싶은, 답이 없는 상태의 무한 반복. 편히 쉬면서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복직 후 힘들어하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가사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했다. 맞벌이는 그래도 된다고. 일주일에 한 번, 5만 원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그건 맞벌이니까 가능한 거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사지 멀쩡한데 회사를 그만둔 남편에게 그런 호사까지 선물해주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내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는 거.
출퇴근만으로도 벅찬데, 집안일까지 내 몫이 되다니... 그의 퇴직을 윤허할 때, 설마 했던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다. 완벽한 헬게이트.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내 몸도 돌보고, 거기에 보태 그의 감정적 기복까지 받아주어야 하는.... 그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단지 돈을 벌지 못해서 모든 노력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다. 자격지심, 피해의식, 분노, 우울감, 사회적 단절 등 설마 했던 상황들이 보태졌다. 회사만 그만두게 해 주면 만사 오케이인 것처럼 말하더니... 물에 빠져서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느낌이었다.
몸이 피곤하니,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와의 갈등은 깊어졌고, 엄하게도 불똥은 아이들에게 튀었다. 백수 아빠임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엄마가 피곤하니 짜증을 내는 걸로 생각했다. 나만 나쁜 엄마가 되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그는 이제 밥은 할 수 있게 되었고, 만개의 레시피를 보고 간단한 음식(주방 상태를 보면 연회급이지만)을 시도한다. 간편식을 쟁여놓고, 청결함의 기준을 낮추었다. 더러움을 참지 못하는 건 나의 문제이니,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마음으로 청소를 한다. 화를 내든, 짜증을 내든 그냥 내 몫인 거다. 간단한 집안일은 아이들에게 일임하고, 경제교육이라는 명목으로 500원씩 용돈을 주고 있다.
챗GPT는 천재인 게 틀림없다. 우리 가족이 약 1년간 겪은 대환장파티와 적응의 시간을 이렇듯 간결하게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다니. 여하튼 남편이 돈을 벌든 안 벌든, 부인이 돈을 벌든 안 벌든,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 집안인을 여자의 몫이 된다는 슬픈 현실. 딸내미가 어른이 되면 좀 나아질까. 외국남자와 연애를 하라고 해야 하나? 엄마는 IBM(이미 버린 몸)이지만 딸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남편의 무직으로 인한 부끄러움이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대처 방법: 가족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며 사회적 압력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사회적 기대를 무시하고 가족의 우선순위를 중시하는 태도를 갖도록 노력해 보세요.
다소 어색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압력/기대'는 분명히 존재한다. 예전보다 맞벌이가 많지만, 가부장적인 사고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전업 남편'은 여전히 기사로 다뤄지는 주제니까.
예상되는 모든 부담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마누라를 들들 볶아서 퇴사를 쟁취한 그.(감정이 잔뜩 섞인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으니까) 일은 저질렀지만 막상 마주할 현실은 녹록지 않았는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그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나도 백수 남편을 자랑처럼 동네방네 떠들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다만 시댁에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딱히 금전적인 지원을 바란 것도, 반품이나 AS가 안 되겠냐고 들이밀 심산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심적 고통에 대한 분담, 경제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결혼 후 효자가 되는 많은 남자들처럼, 그도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끔찍했다. (중요한 건 마음만이다! 일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여전히 당연히 자기를 챙겨주는 존재로 여기고 의지한다) 그런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겠지. 그 마음 십 분의 일만 나를 생각했으면 참 감사할 텐데.
결국 아이들에게도, 양가에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도 아는 거겠지. 정년퇴직도, 명예퇴직도 아니고, 40대 이른 나이에 자발적 백수를 택한 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그의 배우자인 나 또한 친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 남편이 백수라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전업 남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역할을 해냈다면 조금 달랐을까.
"남편은 무슨 일을 하세요?" 내지 "맞벌인데 그 정도는 해도 돼"라는 말에 당황하는 내 모습이 서글펐다. 혹여나 나의 암병력을 아는 사람들에게 '몸도 아픈데, 백수 남편에 애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불쌍한 캐릭터'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좋은 회사를 다닌다거나, 엄청난 수입을 바라는 것과는 다르다. 가족구성원으로 필요한 어떤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 부끄러움, 분노가 섞인 감정이었으리라.
챗GPT는 가족구성원끼리 잘 이해하고 방법을 찾아보라는데, 나와 그 둘만 아는 우리만의 비밀 아닌 비밀인지라 어째야 할지. 내가 그를 좀 더 사랑했다면 사회적 기대 정도는 가볍게 패스할 수 있었을까.
- 아내가 남편의 무직 상태로 인해 외부 일과 가사를 모두 돌봐야 할 경우,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 대처 방법: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시간을 계획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유시간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보세요.
4번 가사부담 증가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맞벌이일 때도 어린 자녀를 둔 '시간 거지' 워킹맘이었는데. 외벌이 가장이 되고 나서 수입은 반토막 나고, 시간은 더 없어지는 이런 Magic 같으니라고! 특히나 암 진단으로 이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바람이 커졌는데, 현실은 반대가 되었다.
병가 후 복직이라 연차가 없지만,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 치료과 검사, 진료가 필요하다. 직장생활과 치료만으로도 하루의 절반. 퇴근 후 각종 집안일과 아이들과의 시간,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엄마. 이제 아이들이 커서 손이 덜 가지만, 여전히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결혼 전에는 '자아의식'이 너무 강해서, 내가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이제는 '자아'라는 게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굳이 남편이 백수가 아니더라도, 많은 워킹맘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 머리로는 이제부터는 '내'가 우선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기대되는 수많은 역할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적당히 농땡이도 치고, 한 번씩 눈 질끈 감고 외면하면서 나를 돌보고 지키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가족들에게 섣불리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니까. 알아서 셀프로 짧게라도 나를 위한 'Me Time'을 만들어야지.
(맺음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과 협력입니다.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일 것입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남는 건 가족이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결국 함께니까. (아, 물론 영원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백수 초기 헬게이트가 열린 듯한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치지만, 이렇게 시간은 가고 조금은 나아졌다. 물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앞으로도 생각지 못한 일들은 생길 거고. 삶은 계획한 대로, 목표한 대로 살아지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발생할 수 있고, 중요한 건 어떻게 대응하는 지다.
무직 남편이 몰고 온 이런저런 소용돌이 같은 시간과 감정을 챗GPT 덕분에 정리할 수 있었다. 마치 친한 친구 5명과 이야기를 나눈 느낌이랄까. 너 정말 똑똑하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무직 남편이 다시 직업을 갖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으련? : )
- 챗GPT가 알려주는 백수남편을 둔 아내 마음(E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