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통해 가장 절실히 깨달은 진리 중 하나.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남녀가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옵션이 아니라 필수인 경우 누군가는 해야 하고, 그 누군가는 그걸 견딜 수 없거나, 기다릴 수 없는, 목마른 자이다.
오래간만에 드라이하고 담백하게 글을 쓰고 싶었으나, 분노게이지 상승 중이라 글도 키보드 자판도 활활 타오르는 중.
지난 몇 주간 월급 외에 부가 수입을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알아보고, 사람을 만났다.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오늘도 출근을 했건만. 본가에서 며칠간 푹 쉬다 온(실상 칠순이 넘은 시어머니 등골을 빼고 온) 그는 지금 소파에 누워 윔블던을 시청 중이다. 아 놔... EPL도 모자라 이제 테니스까지? 팔자가 늘어졌구나~
자기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던, 속세와는 담을 쌓음에 부심 뿜뿜 하던 그. 되지도 않는 자존심에 실업급여도 내팽개쳤다. 자발적 퇴사에 이어 건강보험 폭탄이 날아오는 것도 몰랐다. 어떻게 어떻게 일단 피부양으로 밀어 넣고 뒤수습하느라 발을 동동거렸다. 수입을 날린 것도 모자라서 추가 지출을 만들어내다니.
월급도 모르는데 연말정산을 알 턱이 없다. 그래도 작년에는 반년치의 근로를 했고, 세율이 높았을 테니 경정청구를 하라고 친절히 이야기했다. 맹세컨데 절대 화내지 않았다. 하지만 당최 알아듣지 못한다.
"네가 더 낸 세금을 돌려받아야 하니까 홈택스에 들어가서 내용을 확인하면 돼!"
이보다 더 친절한 설명이 어디 있다고. 잘하는 것만 하고 싶고, 모르고 어려운 건 피하는 못된 기질의 그.(안타깝게도 아들이 그걸 쏙 빼닮았다) 역시나 회피한다. 두어 번 더 이야기하였으나, 적반하장 짜증을 낸다. 보통 때도 잘 모르고 어려우면 화를 낸다. 헐... 반영하지 못한 기부금 영수증도 있고, 아마도 세금 환급이 꽤 될 텐데.
정기 부가세 신고를 하러 홈택스에 접속했다가, 그의 만행(?)이 떠올랐다. 빈둥거리며 제 몫도 못 챙기는 게 얄미워서 그냥 두고 싶지만, 눈먼 세금으로 날리는 돈이 아깝다. 한 푼이 아쉬운 40대 외벌이 가장 아닌가. 그래, 오늘도 졌다. 그가 미루고 미루던 일을 30분 만에 해치웠다. 무려 80만 원 환급. 돈은 벌었지만 씁쓸한 이 기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알콩달콩 신혼이었다. 다만 그는 게을렀고, 집안일의 비중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몰린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랏, 이건 아닌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습관적으로 쓸고 닦던 것을 멈추었다. 심하게 더러워지면 설마 청소를 하겠지라고 기대하며. 그러나 커다란 착각이었다. 그의 더러움의 기준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주일 넘게 청소를 안 하고 버티던 어느 날 방문 뒤에 주먹 만한 먼지 뭉치가 보였다. 그에게 너무 더럽지 않냐고, 은근 기대를 담아 멘트를 날렸다. 그는 먼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아니~ 괜찮은데."
나의 패배의 시작은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청소도, 음식도, 육아도, 경조사도, 심지어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모든 건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나의 몫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였다면 지는 게 아니라, 그를 위하는 것이 기쁨이 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잘 나가는 남편을 둔 와이프를 꿈꾸며 내 딴에 내조와 헌신을 했었다. '언젠가 나의 희생에 고마워하겠지' 내지 '언젠가 나에게 보답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가 1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 덧붙여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알게 된 어느 날, 되지도 않는 기대를 내려놓았고 자발적인 '지는 삶'을 택했다. 어차피 기대해도 돌아올 게 없으니, 그냥 내가 하기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부양의 의무를 외면했던 아빠, 그리고 그 몫까지 두 배, 세 배 일하며 힘들게 우리 남매를 키운 엄마. 그런데 고모(아빠의 누나)가 엄마에게 그랬단다. 엄마가 너무 억척스럽게, 알아서 잘 살아서 그러는 거라고, 그냥 애들 끼고 들어앉아 있으면 굶겨 죽게 야 두겠냐고. 그렇게 책임감을 키워줘야지 다 네 잘못이라고. 엄마는 억울한 마음에 말한 대로 해보았는데... 아뿔싸! 눈치를 챘는지 집을 나가서 연락이 두절됐단다. 진짜로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어린 자식들을 보니 눈물이 났단다.
'내 손으로 내 자식 벌어 먹인다!'
배움이 길지 않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던 시절. 투잡, 쓰리잡을 뛰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던 엄마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열심히 산 건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였겠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자식을 낳았으니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키워야 하니까.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이 자라서 독립을 하기 전까지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해주어야 한다. 남편과의 관계나 이런저런 감정들과는 무관하게, 부모로서 해야 하는 거니까. 내가 선택한 삶에 따르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
어느새 마흔 중반이 되고,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가장이 되었다. 이제 삼십 년 전의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딸로서 엄마 팔자를 닮은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지켜낸 꿋꿋함과 지혜를 물려받은 거다. 목마른데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 쓰러지느니, 기꺼이곡괭이로 우물을 파는 씩씩한 삶을 택하는 용기까지. 이렇게 하다 보면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