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저한 육식주의자였다. 매 끼니마다 고기반찬이 있어야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릴 때는 소불고기를 특히 좋아했고, 밑반찬으로는 짭조름한 장조림이 있어줘야 밥을 제대로 먹은 기분이었다. 좀 커서는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일절의 부대낌 없었으며 삼시 세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모든 종류의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는 최강 육식파인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웰빙‘은 파국 그 자체였다.
시대마다 특정한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유행어가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자주 언급되는 ‘욜로’(현재의 행복을 중시)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단어들이 유행하기 전인 2010년 즈음에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큰 인기를 누렸다. 각종 상품과 마케팅에 활용되는 건 물론이고 TV 프로그램(힐링캠프) 제목에도 ‘힐링’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 시기에 창업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나의 수제청 브랜드가 ‘힐링에이드’인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보다 이전인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새천년의 희망이 무럭무럭 피어오를 때 새로이 등장한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웰빙'(well- being)이다. 이 단어의 어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한국에서는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 정도로 해석되었다.
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패션, 여행, 건강 그 어떤 상품에도 '웰빙'이라는 이미지를 붙여 소비하기에 이르렀다. '웰빙'을 내건 정보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했고, 방송에서 조차 연일 '웰빙'을 언급하며 각종 건강 정보를 송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영향으로 우리 집 밥상에도 '웰빙'이라는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안착한 웰빙은 첫 번째로 MSG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엄마는 MSG의 대표 격인 감칠맛 대폭발 ‘미원’과 '맛소금'을 부엌에서 퇴출했다. 잇달아 고향의 맛 ‘다시다’도 함께 방출되었다. 이후로 나는 한참을 고향의 맛을 만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고기가 사라졌다. 이건 나에겐 MSG보다 더 큰 낭패였다. 밥상엔 각종 풀떼기들과 고기를 대신할 버섯, 두부 등이 매일 올라왔다.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도 엄마는 단호했다.
“엄마, 고기 없나? 나 버섯 싫은데.”
“버섯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고마 무라(그만하고 먹어라). 엄마가 고기를 많이 줘서 우리 딸이 아팠는갑다. 고기가 그렇게 몸에 안 좋다는데.”
“엄마, 내가 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고기반찬을 자주 해준 건 아이다. 몸에 안 좋다고 햄이나 소시지도 안 사줬잖아. 도시락에 나물이랑 콩자반 같은 거만 넣어서 내가 얼마나 짜증이 났는데. 하하하”
어쨌든 ‘웰빙’의 시작과 함께 엄마의 자책을 날로 커져만 갔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놈의 ‘웰빙’ 덕분에 식탁에서 고기반찬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메인으로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미역국이나 된장찌개에서 가끔 소고기를 만날 따름이었다. 김치찌개에는 고소한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 대신 담백한참치 통조림으로 대체되었는데, 뭐가 더 건강한 음식인지는 그때도 지금도 의문이다.
그렇게 엄마는 본인만의 ‘웰빙’을 열심히 실천했다.
그런 와중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오리고기’였다. 그 시기에 엄마는 이런 말도 자주 했다.
“소고기는 거저 줘도 먹지 말고, 돼지고기는 누가 주면 먹고, 오리고기는 내 돈 주고라도 찾아 먹어라.”
그리하여 특별한 날 외식은 소고기에서 오리고기로 대체되었고, 오리 고기 중에서도 훈제오리는 자주 식탁에 올랐다. 한참 후에 훈제오리의 식품 유형이 ‘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가 받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네. 그런데 그 사람 채식주의자였어. 엄마가 고기를 많이 먹여서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건 말이 안 돼. 알겠지?”
하지만 이후로도 엄마는 건강상의 문제로 나의 지나친 육식을 자주 질책했으며, 그럴 때마다 나는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건성으로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던 내가 건강이 아닌 다른 이유로 육식을 멀리하게 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