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먹던 뜨끈한 김치 국밥이 떠오른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음식이 언제부터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겨울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엄마의 음식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2월 중순부터 시작된 봄방학은 3월의 새 학기를 맞이하기 전의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물러나고 새로이 맞이할 따뜻한 봄을 앞둔 그때, 나는 종종 심한 몸살을 앓았다. 추위가 한창일 때는 감기조차 걸리는 일이 없다가 겨울의 끝 무렵에 독감에 걸리곤 했다. 마치 끝나가는 겨울이 시샘이라도 하듯 말이다.
열이 나도 좀처럼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다.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조제약을 팔던 시대였으므로, 엄마가 약국에서 지어 온 약을 먹고 비몽사몽 잠들었다. 그러다 인기척에 잠을 깨면 엄마는 여지없이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앓고 나면 어느새 열이 떨어지고 콧물과 기침이 시작되었다. 그러면 엄마는 김치와 콩나물, 떡국 떡을 함께 넣어 걸쭉하면서도 칼칼한 김치국밥을 만들었다. 후후 불어 한 숟갈씩 떠먹으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평소 즐겨 먹던 음식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몸이 개운하지 못할 때에는 김치 국밥이 생각난다.
[내 영혼을 위한 김치 국밥 만드는 법]
1. 멸치 육수를 준비한다.
2.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먹기 좋게 썬 김치와 콩나물, 떡국 떡을 넣는다.
3. 찬밥도 한 덩이 넣어 같이 끓인다.
4. 너무 걸쭉하면 육수를 넣어 농도를 맞춘다.
5. 싱거우면 액젓이나 소금, 또는 김치 국물로 간을 한다.
5. 호호 불어 맛있게 먹는다.
성인이 되고 김치 국밥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또 한 번 찾아왔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음주가무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즐거움이었다. 고3 수험생 시절의 힘듦을 그렇게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술이 맛있었다기보다는 술자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음주에 있어서만큼은 정신력이 매우 강했던지라 불콰하게 취한 날에도 꼿꼿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많이 마신 날이라 해도 현관에서부터 내 방까지 가는 길에 무너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렇게 일단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침대에 대자로 뻗었고, 그때부터 천장은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런 날 아침이면 꼭 김치국밥이 상에 올랐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콩나물과 김치의 비율이 달라지고(콩나물 우세) 떡국 떡과 밥의 양이 줄어 걸쭉함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그릇째 들고 마시면 전날 먹었던 술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잦은 음주가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침엔 김치국밥과 함께 등짝 스매싱, 다소 험한 말도 함께 상에 올랐다.
“빨리 처먹고 학교 가라.”
분명 멀쩡하게 귀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귀신 같이 알았다. ‘귀신은 속여도 엄마는 못 속인다.’는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콧물을 줄줄 흘리는 어린 딸을 위해 김치국밥을 끓이는 마음과 다 큰 딸의 숙취가 걱정되어 해장국밥을 끓이는 마음은 같은 마음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결국은 딸은 걱정하는 엄마의 사랑인 것이다.
올해는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온 탓에 유난히 큰 일교차에 자주 콧물을 훌쩍 거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걸쭉한 김치국밥을 끓인다. 엄마가 끓여주던 김치국밥을 생각하며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