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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서재 Dec 06. 2024

멍게가 기가 막혀

주부 창업 열전

여름을 앞둔 5월의 어느 날, 끝나가는 봄이 못내 아쉽기라도 한 듯 세찬 빗방울이 요란하게 땅을 두드렸다. 바로 그날 22개월 된 나의 아이는, 튀어 오르는 물방울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어린이집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옆에 꼭 끼고 있고 싶었다. 아이의 친구들이 하나, 둘 어린이집에 입소할 때에도 나의 의지는 뚫을 수 없는 방패처럼 단단했다. 그런 면에서는 나는 극성인 엄마였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몇 번의 위기를 맞았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 환경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창업을 선택했다.




집에서 만든 레몬청이 창업의 시작이었다. SNS에 올리자 반응이 뜨거웠다. 망고, 블루베리, 파인애플 등 여러 가지 과일을 섞은 과일청은 지금은 흔한 먹거리가 되었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롭고 핫한 아이템이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건 불법이므로 작은 상가를 구했고 법규에 맞춰 시설을 완비했다. 노력과 열정 덕분인지 상가를 계약한 날로부터 단 일주일 만에 식품제조업 허가증을 취득했다. 그때 나의 추진력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놀랍도록 낯설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을 꼽자면 단연 그때가 떠오른다.  


시설도 갖추었으니 본격적으로 생산에 돌입했다. 지금은 포털 사이트에 수제 레몬청을 검색하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제품들이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포함해서 딱 3군데 밖에 없었다. 막 수요가 일어나던 시기였으므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주문은 밀려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자고 일어나면 신생 업체가 열댓 개씩 생기곤 했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미숙하고 요령이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나에게 육체노동은 몹시 고달팠다. 15킬로가 넘는 박스들을 나르다 보면 영혼이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려 아이는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혼자 남아 택배를 싸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나왔다. 대박 난 온라인 판매자들이 한 번쯤 겪는다는 잊지 못할 눈물의 택배 포장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바쁜 딸이 안쓰러웠던 엄마는 꼬박꼬박 점심밥을 챙겨 왔다. 밥 먹을 시간 없다고 툴툴거리는 딸에게 서운한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한 손에는 양푼이를 한 손에는 멍게를 들고 나타났다. 준비해 온 장바구니에서는 밥과 각종 야채들, 초장, 참기름, 김가루, 깨소금까지 줄줄이 나왔다. 마치 도라에몽의 요술 주머니처럼 끝도 없이 나오는 재료를 보며 한참을 깔깔 웃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요술 주머니를 들고 나타나기 하루 전, 나는 멍게가 먹고 싶었다. 여름철 멍게가 맛있다는 기사를 보고 난 후였다.


“엄마, 나 멍게 먹고 싶다, 여름 멍게가 그렇게 맛있다네”

“멍게 회도 먹고 싶고, 멍게 젓갈도 먹고 싶다.”

“돌멍게 껍데기에 소주 따라 마시면 쥑이는데.”


무심하게 뱉어 낸 쓸데없는 말을 엄마는 귀 기울여 듣고 있었던 거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그 요술 주머니에서 돌멍게와 소주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멍게비빔밥 만드는 법]

1. 신선한 멍게 속살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2. 상추, 깻잎, 오이, 어린잎채소 등을 취향껏 준비한다.

3. 흰쌀밥에 채소와 멍게를 보기 좋게 듬뿍 올린다.

4. 초장과 참기름을 두르고 김가루와 통깨도 솔솔 뿌린다.

5.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게 먹는다.



자고로 멍게비빔밥은 멍게 맛으로 먹어야 한다. 초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멍게의 맛과 향이 가려질 수 있으니 적당히 넣자. 해초를 넣어도 좋은데 구하기 힘들다면 야채만으로도 충분하다. 잘 비벼 한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면 멍게의 향긋함과 참기름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하던 날, 빨간 가방을 등에 메고 신나게 따라나선 아이는 엄마와 헤어지는 문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빗소리에 섞인 아이의 울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니 내 얼굴도 빗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누구는 남들 다 보내는 어린이집 보내며 참 유난이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멍게 먹고 싶다는 한 마디에 모든 재료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엄마 딸인데 오죽하랴. 그런 게 유난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맘껏 유난을 떨겠다. 유난스럽게 사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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