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눈이 내리는 일이 없는 그 겨울에 눈이 내렸다. 2주 간격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3번째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었다. 내 인체는 참으로 유별나서 병원 근처에만 가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입원을 하면 약물이 투입되기도 전에 부작용이 시작되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가끔 그 약물 특유의 냄새가 떠오를 때면 몸서리를 친다. 그때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모호하다. 고통에 대한 나의 방어기제 때문인지 그 시기가 몇 년도였는지 몇 월이었는지 엄마한테 묻고 또 물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날 엄마의 표정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사건의 발단은 냉면이었다. 본격적인 약물 치료가 시작되기 전, 물만 마셔도 토하던 와중에 어쩐 일인지 진하고 뜨거운 육수를 곁들인 매콤한 비빔냉면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하필 기다릴 땐 오지도 않던 눈이 내리고 있었고, (눈 안 오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산) 내가 치료받던 병원은 오르막 꼭대기에 있었고, 아빠는 타 지역에서 일하고 있었고, 오빠는 한 시간 거리의 집에 있었고, 곁에 있던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도저히 나를 혼자 두고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그 시절에는 배달의 민족이 없었다. 택시를 타면 넉넉잡아 10분 거리에 유명한 냉면집이 있었지만 여러 상황이 맞물려 결국 난 냉면을 먹지 못했다.
냉면을 못 먹어 속상한 나보다 더 원통해하던 엄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엄마는 냉면 한 그릇에 하늘을 원망했다. 어찌나 속상해하던지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씩씩거리던 엄마의 얼굴이 점점 슬퍼지는 걸 보았다. 나도 따라 슬퍼졌다. 사실, 그때 냉면이 ‘짠’ 하고 나타났더라도 내가 한 입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었을까. 아니라는 걸 엄마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입이라도, 하다못해 육수 한 모금이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 그건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다.
냉면은 크게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나눌 수 있다. 평양이니 함흥이니 하는 헷갈리는 지역명은 접어두자. 나는 무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주로 비빔냉면을 먹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명태나 간자미 무침이 들어간 회냉면을 즐겨 먹는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얇고 투명한 면발에 새빨간 양념이 듬뿍 올라간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군침이 싹 돌고 입맛이 저절로 당긴다. 이때 면 위에 소복하게 올라간 잘 숙성된 회무침이 바로 화룡점정이다. 다소 평범할 수 있는 비빔냉면도 회무침을 만나면 감칠맛이 폭발한다. 혹여 냉면이 질기다고 가위로 사정없이 자르는 건 반칙이다. 자고로 냉면은 이로 끊어 먹는 맛이 있어야 한다. 가위질은 딱 한번 이면 족하다.
맛있는 냉면 전문점이라면 면과 함께 나오는 뜨거운 고기육수를 빼놓을 수가 없다. 냉면집의 승패는 바로 이 육수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맛있는 냉면이라 해도 온육수가 맛이 없으면 대략 낭패다. 그것은 앙꼬 빠진 찐빵과 같다.
이렇게나 비빔냉면을 좋아하는 나도 가끔은 물냉면을 먹곤 한다. 머리가 띵하게 울릴 정도로 시원한 냉면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면 전날 마신 알코올이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역시 음주 후에는 뜨겁거나 차갑거나 시원한 국물이 딱이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로우니 자중하자.
결혼 전까지 엄마랑 냉면을 참 많이 먹으러 다녔다. ‘어디 냉면이 맛있더라.’ 소문이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다. 엄마는 먹을 때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트리며 자책했다. 너 아플 때 냉면 못 먹여서 너무 속상했다고. 하지만 이 후로 엄마와 먹은 냉면이 둘이 합쳐 100그릇쯤은 될 테니 그것도 그저 한 때의 추억으로 남았다.
얼마 전 방송인 풍자님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냉면집에 다녀갔다. 육수를 싸 들고 가고 싶다고 극찬을 한 탓에 연일 사람들로 붐볐다. 방송을 보니 엄마랑 맛있는 냉면이 한 그릇이 먹고 싶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갔는데, 엄마는 더 이상 그때의 일을 떠올리지 않았다. 딸과 맛있는 냉면을 먹었다고 마냥 행복해했다.
나의 투병 기간은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고통과 시련은 결국에는 끝이 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하는 분노와 원망은 모두 태워버리자. 그리고 견디자. 그 어떤 힘듦도 결국엔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조차 추억이 되는 날이 온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