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을 스치는 나뭇잎 냄새가 짙어지고 청명한 하늘이 눈부신 가을이 오면, 우리는 어김없이 강변 앞 그 따뜻한 보금자리로 모여들었다.
동네 어귀에서 해 질 녘까지 신나게 놀다가 ‘밥 먹어라’ 소리에 후다닥 집으로 달려가는 어린아이들처럼, ‘밥 먹으러 와요’ 소리에 우리는 한달음에 그곳으로 파고들었다. 딱히 준비할 건 없었다. 허기진 배와 맛있게 먹어 치우겠다는 파이팅 넘치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했다.
그 시절 우리는 자주 만났고, 자주 먹었으며, 자주 웃었고, 자주 울었다. 처음 해보는 육아로 지쳐 있었고,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함은 날로 커져갔다. 웃는 아이를 보면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의 삶 이외의 내 인생은 끝난 것 같은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기어 다닐 땐 그곳에 모여 차를 마시며, 손바느질로 아이 가방 만들기 같은 소소한 취미 활동을 했다. 육아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각자의 힘듦을 성토하기도 했다. 그 친구의 집은 ‘강변 카페’나 ‘강변 공방’으로 불리며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땐, 함께 공원도 가고 강변도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이들이 좀 커서 어린이집에 입소하자 우리 다섯 명중 네 명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육아에 전념했던 그 친구는 우리 중 나이는 가장 적지만 배포는 가장 컸다. 큰 배포만큼이나 인심도 좋아 주변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손은 또 어찌나 빠른지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그는 틈날 때마다 우리를 불러 밥을 해 먹였고, 근처에서 각자 자영업을 하던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면 그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 파티의 시작은 이러했다. 어느 가을 과메기가 우리의 주요 화젯거리에 올랐고, 우리 중 과메기를 못 먹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의 수가 과반 이상이었고, 그래서 그 친구는 과메기를 주문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과메기 파티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우리들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손이 큰 그 친구는 과메기만 준비하기엔 다소 섭섭했다.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대접하곤 했는데 그때 먹은 ‘매운 등갈비찜’과 ‘새우감바스’는 과메기와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바삭한 김에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을 듬뿍 찍은 과메기와 바다 향을 가득 담은 미역(다시마), 비린 맛을 잡아 줄 쪽파, 매콤함을 더할 고추, 알싸한 마늘까지 푸짐하게 올려 한 입 가득 넣고 꼭꼭 씹으면 갖가지 맛이 한데 어우러져 입안에서 흥겨운 파티를 벌인다. 이때 한국인의 소울 드링크, 소주로 마무리를 하면 이런 행복이 따로 없다. 호불호가 강한 이 음식은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음식인 것이다.
매서운 바닷바람에 꼬들꼬들하게 건조된 포항 구룡포 과메기는 생선 특유의 기름진 풍미와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과메기는 대부분 꽁치로 만든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과메기는 청어를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1960년대 이후 청어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지금의 꽁치가 주재료가 되었다. 선조들이 저장과 보존을 위해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인 과메기가 지금은 겨울철 별미로 자리 잡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 만남이 무려 13년 동안 이어지게 될지는. 아기 띠에 매달려 있던 우리의 아이들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몇 년 전 그 친구는 친정어머니의 사업을 돕기 위해 멀리 안동 하회마을 목화밭으로 떠나버렸다. (굳이 떠나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늘어난 물리적 거리만큼 내 마음이 못내 서운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를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 브랜드를 론칭하여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누구보다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친구는 드디어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과메기 파티는 막이 내렸지만 우리 인생의 아모르파티는 시작되었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갈지 나는 안다. 힘들고 지칠 때 어설픈 조언이나 위로보다 ‘밥 먹자’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된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 또한 그런 친구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