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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서재 Nov 26. 2024

님아, 그 육수를 건너지 마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수제비

각고의 노력 끝에 귀한 생명이 찾아왔다.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봤을 땐 기쁨보다 불안함이 앞섰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이 행복이, 어떤 하찮은 운명의 장난으로 산산조각 날까 두려웠다. 그 누구도 내 아기를 데려갈 수 없게, 아무 일도 없는 듯,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무사히 열 달을 채우고 예쁜 아기를 만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임신을 확인하고 일주일 뒤, 그러니까 정확히 5주 차에 접어들면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던 나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입덧은 친정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엄마는 오빠를 가졌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 막 달까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매일 초코파이 한 봉지를 몇 번에 걸쳐 쪼개 먹으며 그 시기를 버텼다고도 했다. 엄마는 초코파이라도 삼킬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온 동네에 입덧 심한 새댁으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고 한다. 3년 터울로 나를 가졌을 땐 그나마 호전되어 일곱 달까지 입덧을 했다고 한다. 엄마의 유전자로부터 발현된 게 분명한, 떠들썩한 나의 입덧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와 나는 우리 둘만의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건 바로 쫄깃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최대한 얇게 뜯어 진한 멸치 육수에 넣어 끓인 ‘손수제비’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건 아니다. 투박하게 썬 감자 하나면 충분하다. 여유가 있을 땐 애호박과 당근으로 사치를 부린다. 조금 싱거워도 괜찮다. 간장에 얇게 썬 대파와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어 빡빡하게 재운 양념장을 곁들이면 게임오버다.


가족들과 함께 먹던 손수제비가 우리 둘만의 추억의 음식이 된 건, 내가 본격적으로 반죽에 합류했던 중학교 시절부터다. 티브이 요리 프로를 통해 반죽에 쫄깃함을 더 할 한 끗을 발견 하면서부터 반죽은 내 담당이 되었다. (그 한 끗은 식용유, 얼음물, 맥주 같은 것들이다. )


그 옛날 어두운 밤 엄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글을 쓰던 한석봉 모자처럼 우리는 해가지면 육수를 끓이고 밀가루를 치댔다. 내가 아무리 쫄깃한 반죽을 치댄 들, 엄마의 육수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순자 씨의 비법 멸치 육수, 수제비  만드는 법]


1. 멸치나 디포리는 마른 팬에 한번 볶아서 수분을 날린다. (비린 맛 제거)

2. 큰 냄비에 1번을 넣고 다시마, 무,  대파, 양파, 청양고추, 통후추를 넣는다.

3. 물을 넉넉히 붓고 5분 정도 팔팔 끓인다.

4. 약 불로 줄이고 30분 이상 끓인다.

5. 채에 걸러 국물만 병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5일 이상 보관 시 냉동한다.)

6. 우려낸 육수에 감자를 넣고, 반죽한 수제비를 얇게 뜯어 넣는다. 취향에 따라 당근이나 애호박을 넣어도 좋다.

7. 한소끔 끓여 수제비가 익으면 예쁜 그릇에 담아 맛있게 먹는다.


※ 혹여 위의 과정이 힘들다면, 한 알 육수를 사용하자. 순자 씨도 나도 얼마 전에 갈아탔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자.





국과 탕, 찌개처럼 국물 요리가 많은 우리나라에는 육수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고기를 푹 삶아 낸 고기 육수와 멸치를 베이스로 한 멸치육수가 있다. 지역에 따라 선호도가 나뉘는데, 아랫동네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누가 뭐래도 멸치 육수다.


내가 자란 부산에서는 거의 모든 국물 베이스에 멸치나 디포리(밴댕이)가 들어가는데 일반적으로 멸치 육수로 통일해서 부른다. 미역국을 끓을 때도, 된장찌개를 끓일 때도, 떡국을 끓일 때도 멸치 육수를 사용한다. 소고기만 들어가면 아쉽다. 멸치 육수가 들어가야 깊고 진한 맛이 난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육수가 마를 날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육수를 끓이는 날이면 온 집안에 침 고이는 바다 냄새가 가득했다. 그 맛있는 냄새가 한순간에 지옥의 냄새로 바뀐 건 바로 입덧이 시작되고부터였다.


낮 시간에 혼자 집에 둘 수 없다는 장모와 사위의 모략으로 나는 친정집으로 옮겨졌다. 엄마는 여전히 일주일에 한두 번씩 육수를 끓였는데 그 냄새가 그렇게 힘들었다. 분명 같은 냄새인데, 새 생명을 잉태한 나의 후각은 바다를 통째로 삶은 듯한 그 짠내를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냄새의 유무와 상관없이 입덧은 계속되었으므로 그 지옥의 냄새에 대해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비록 나는 힘들더라도 식구들은 맛있게 먹었으면 했다. 대신 속으로 외쳤다.


‘엄마, 제발 그 육수를 끓이지 마오.’


20주가 되던 날 내 입덧은 정점을 찍었다. 밤새도록 구역질을 하고 급기야 다음 날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날 밤을 기점으로 서서히 줄어든 입덧은 거짓말처럼 25주에 막을 내렸다. 난산 끝에 건강한 아이를 낳았고 엄마는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을 날마다 끓였다. 내가 좋아하는 진하게 우린 멸치 육수를 듬뿍 넣어서.


내 삶에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엄마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어느새 일흔이 넘어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를 볼 때마다 생각하고 다짐한다. 엄마의 남은 생은 내가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수제비를 참 좋아하던 순자 씨는 수제비를 좋아하는 딸을 낳았고 그 딸은 또 딸을 낳아, 모녀 삼대는 오늘도 사이좋게 수제비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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