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남녀

폭풍의 눈으로 향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by 두부언니


time 01

Topˏˋbergamotˏgrapefruit

Midˋˏirisˏhedioneˏpepper

Baseˏˋpatchouliˏvetiverˏamberyˏmusk





철골은 바다를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과거, 배를 옮길 때 쓰였다는 붉은색 철골은 해풍에 녹이 슬어 표면이 곰보 투성이었다. A와 B는 모난 돌이 얼기설기 깔려 있는 마당을 지나 건물의 입구로 들어섰다. 해변에 위치한 그곳엔 여름 나절을 보내기 위해 이미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옛 조선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세워 올렸다는 카페는 해변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건물 앞으로 작게 난 해변가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수면 위로 물 수제비를 띄우는데 열중했다. 덕분에 물가에 가까운 자갈밭에는 납작한 돌이란 돌은 모두 씨가 말라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통창 너머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문한 음료를 들고 자리에 앉는데 까진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A가 음료와 파이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자리로 걸어오는 동안, B는 손에 들고 있는 검정색 기다란 우산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두었다. 자리에 앉은 A와 B는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는 대화를 나누며 음료를 마시고, 이따금 포크로 파이를 헤집었다. 오랫동안 교제한 연인에게서 느껴지는 약간의 권태와 그보다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점심에 먹었던 감자전과 이 곳까지 걸어오면서 보았던 고양이며 물수제비 따위에 관하여 나누던 대화가 돌연 방향을 바꾸었다.



B가 입을 열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A가 대꾸했다

"대출받아서 전셋집 들어가고, 같이 벌어서 조금씩 갚아가면 되는 거지."


"말했잖아. 지금 내 상황에선 그것도 부담스럽다고."
"어떻게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일 수 있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꾸려가는 거지."

"나는 잘 모르겠어. 고정수입도 없는 내가 책임지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볼 만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그거 티라미슈야?"


평행선을 그리던 둘은 결국 교차할 지점을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잠시 대화를 멈춘 두 사람의 시선이 바다를 향해 뻗었다. 수많은 물수제비들이 때로는 직선을, 때로는 포물선을 그리며 수면을 어지럽혔다. 전세 대출과 감자전의 크리스피함을 오가던 대화가 돌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들어봐. 내가 보라색이라고 하면 보라색인 건데, 자기는 자꾸 그걸 아니라고 하잖아."
"그거야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니까 하는 말이지."

"자기는 항상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어."

"그건 비약이다 오빠."

"그럴지도. 아, 아까 먹은 감자전 사이즈가 좀 컸지?"
"맞아. 배불러서 다 못 먹었잖아."



1g이나 영혼은 실려 있었을까.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두 사람의 내면을 허리케인이 휩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애써 잠잠하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어느덧 유리잔의 커피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파이는 절 반만 남아 그릇과 쟁반 위에 어지러이 부서져 있었다. 자리를 먼저 박차고 일어 선 것은 A 었다.


그녀는 쟁반을 들고일어나며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B는 벽에 기대어 두었던 우산을 챙겨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약간 어둑하고 흐린 하늘이 흡사 미스트와 같은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우산을 쓰지 않은 채로 나란히 걸어 카페를 빠져나갔다.


B의 손엔 커다란 검정색 우산이 하나 들려 있었고, A는 양팔을 모아 팔짱을 낀 채로 둘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Noteˏ
시멘트 / 모난 돌 / 고요 / 시간

패츌리의 향기가 시크한 도시의 느낌을 줍니다. 나른한 오후를 깨우기에 좋은 향기입니다.

답답하고 꽉 막힌 공기 속에서 숨 쉴 구멍을 찾게 해주는 향입니다. 베르가못과 패츌리의 향이 싱그럽고 시원한 느낌을 줘요. 주위에서는 몰아치는 태풍을 피해 잠시 태풍의 눈 속으로 몸을 피해보았습니다. 태풍의 눈으로 들어선 순간, 사위의 시간이 멈추고 잠시나마 잠잠해지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될 거예요.

*이 글은 paffem의 'time 01. 회색 빛 시간'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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