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

물아래서 올려다본 세상은 시시각각 조각났다

by 두부언니


melt 02



Topˏˋ roseˏ peach

Midˋˏ musk, amber

Baseˏˋ sandalwoodˏ patchouli





미끄러지듯 두 시선이 수면 위에서 만났다. 그들은 고개만 물 밖으로 내놓은 채로 수면 가까이 떠 있었다. 그 주위로 버드나무가 원을 그리며 늘어져 있었고, 숲길을 따라 난 개울은 이 곳에 한동안 고여 있다가 더 넓은 강줄기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호수라고 하기엔 조금 왜소했고 연못이라고 하기엔 제법 면적이 넓었다. 수심도 꽤나 깊었다. 수면 가까이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니, 어딘가에 만개했을 꽃무덤의 향기가 실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진영은 물아래로 여동생의 손을 잡아 보았다. 모난데 없이 작고 동그란 손이 진영의 손바닥 안에 쏙 들어왔다. 소녀의 긴 머리가 수면 위에 물감처럼 풀어지는 모양 때문인지, 이렇게 손을 꼭 잡고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물아래로 삼켜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개울물은 느린 유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가도,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멀어진다 싶으면 헤엄쳐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팔을 내저을 때마다 뺨에 와 닿아 부서지는 물결이 동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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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보금자리를 떠난 지 이제 석 달째 되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고목에서 떨어진 가지의 느낌을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환상은 떠나온 둥지에 대한 그리움을 지워내기엔 충분치 않았다. 오리알은 낙동강을 떠다니며 둥지를 그리워했을까. 도무지 마음이 붕 떠서 어디에 내려앉을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영은 그들을 둘러싼 물가의 버드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호숫가를 빙 둘러 버드나무가 드문드문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숲은 나무와 흙을 동원해 개울 물을 잠시 이 곳에 가두었다. 그렇게 고인 호수의 물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강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떠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전에 그녀가 팔로 휘저었던 호수는 이미 10만 분의 1초 뒤로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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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물은 곧 큰 강줄기를 만날 것이다. 담수는 그렇게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한다. 하늘은 호수의 중앙에 작은 조각처럼 떠있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나무에 가려지지 않은 작은 구멍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조각난 하늘 안에 구름이 느리게 흐르는 모습은 잘려나간 필름 같았다.


결국 호수를 이루는 것은 그 테두리다. 안에 갇힌 내용물이 아니다. 물은 계속해서 흐르니까. 그들 또한 잠시 이 곳에 고여있던 참이다. 진영은 숨을 크게 뱉으며 물아래로 가라앉았다. 물아래서 올려다본 세상은 시시각각 조각났다. 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 어디선가 풍겨왔다. 희미한 복사꽃 향기가.




Noteˏ
수면 / 반짝임 / 버드나무 / 조각난 빛

강렬한 첫 향이 인상적입니다. 빠르게 휘발되는 첫 향의 모습은 빛을 받아 시시각각으로 반짝이는 수면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첫 향이 휘발된 뒤에 남는 잔향은 은은한 꽃향기입니다.

꽃향기가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꽃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향이에요. 첫 향의 강렬함 때문일까요? 계속해서 변하는 향의 모양을 그려보았습니다.


*이 글은 paffem의 'melt 02. 은은한 비누'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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