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검은 제단
19화: 검은 제단
서울 금천구 폐공장 지하.
콘크리트 바닥 위, 무언가 새겨지고 있었다.
검붉은 잉크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한 인간의 분노로 써내려간 주술이었다.
윤미령이 조용히 손을 올렸다.
“이제 신의 전사도 무너뜨릴 차례야.”
“그가 깨어나기 전에, 분노로 채워야 해요.”
그녀의 앞에는 한 남자가 의식 없이 묶여 있었다.
무속의 옷도, 종교인의 기도문도 없는 그저, 버려진 군복 한 벌이 그의 몸 위에 덮여 있었다.
[장군대신 – 분노와 의무의 신]
윤서린이 설명했다.
“장군대신은 열두대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에요.
무속에선 그를 싸움의 신, 결단의 신,
그리고 마지막을 지키는 신이라 불러요.”
“문제는… 그가 인간 안에서 깨어나면
항상 고통과 책임으로 시작된다는 거예요.”
정우현은 눈을 떨었다.
“…그가 누구야?”
“장군대신의 그릇은…
당신 아버지입니다.”
[과거 – 아버지]
정우현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군인이었던 아버지.
항상 부재했고, 존재는 있었지만 감정은 없었다.
그는 어린 우현에게 아무런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고,
정우현 역시 그를 피했고, 미워했다.
“군대에서 사람만 다루던 사람.
가족은 없었고, 감정은 불필요했어요.”
“그런데 왜 그가 장군대신의 그릇이야…?”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감정을 죽이고, 남을 위해 싸운 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무너진 이 시대의 군웅.”
[윤미령의 주술]
윤미령은 의식용 거울에 손을 얹었다.
“당신이 가족을 외면한 건, 선택이 아니라 겁이었죠.”
“당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가족의 무너짐도, 죽음도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걸 들킬까 봐.”
“그 두려움을, 이제 ‘분노’로 바꿔드릴게요.”
남자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검게 변했고, 손끝에서 전장의 기운이 피어났다.
[정우현의 선택]
“막아야 해요.
지금 각성되면, 그는 ‘신’이 아니라 ‘병기’로 깨어나게 돼요.”
정우현은 주술진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윤서린이 소리쳤다.
“우현 씨, 그 진 안에 들어가면”
“괜찮아.
이건…
아들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야.”
[아버지와의 대면]
진 안,
정우현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
“…정…우현?”
“당신이 날 외면한 거, 미워했어요.
평생, 신도 아버지도 믿지 않았어요.”
“근데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도 누군가 앞에서 약해지는 법을 몰랐던 거죠.”
아버지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널 지키려 했을 뿐이야.”
“근데 난…
그 지킴이 무서웠어요.
그래서 도망쳤고, 이제야 말하네요.”
“아버지,
그만 싸우세요.”
“이번엔 제가 지킬게요.”
“이번엔…
제가 아버지를 믿을게요.”
[장군대신의 정화]
그 순간
공장의 콘크리트 바닥이 울리며,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걷혔다.
정우현의 아버지의 눈에서, 맺힌 눈물이 천천히 흘렀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깃발과 방패가 나타났다.
“나는 장군대신.
피로 지키려 하지 않고,
진심으로 싸우는 자의 신이다.”
[윤미령의 후퇴]
윤미령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눈가에 처음으로 미세한 갈라짐이 생겼다.
“…또 실패했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당신은 하나의 진심으로 하나의 전장을 막았지만
나는 수천의 침묵으로 세상을 지워가고 있어요.”
그녀는 검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다음 화 예고
20화: 신의 아들들
장군대신의 각성과 함께, 세상의 균형이 다시 기울기 시작한다.
윤미령은 이제 마지막 계략으로, 신의 씨앗을 이어받을 아이들,
즉 다음 세대 무속인들과 영매들을 직접 노리기 시작한다.
정우현은 이제 신의 시대를 끝낼 것인가, 계승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