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기숙사 신축을 통해 본 복지국가 이야기

by 이 문

민주고 기숙사를 신축하다


“멋지게 지어진 건물인데, 이게 골칫거리가 될 줄 몰랐네”


민주고 김 교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직 준공이 안돼 컴컴하고 육중한 기숙사 건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기숙사를 신축한 것은 기뻐만 할 일이지 무슨 고민거리냐 싶겠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졸업생들의 기부와 교육청의 도움으로 기숙사가 새로 생기게 되었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기존 기숙사는 싫고 새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기존 기숙사는 이층 침대 두 개가 빽빽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4명이 한 방을 쓰는 상황이었다. 처음에야 다들 동심에 빠져 2층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지만,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용무가 있어 밖에 나가야 할 때는 좀처럼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4명이 들어가는 좁은 공간이다 보니 방에 있는 하나의 화장실을 가는 것도 힘들고 여름에는 무척이나 덥기도 했다. 어떤 학생은 ‘쪽방촌’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을 때 자신의 이야기인 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사정이니 2인이 쓸 수 있는 신축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학생 수에 비해 시설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직 개관도 하지 않았는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우성이다.


이럴 때는 민주고가 아니었던 시절이 그립다.


‘그때는 학교 이름이 뭐였더라?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로 교사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가 그런 것처럼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권위고? 독재고?’


이름이 가물하다. 중요한 건 그때는 일처리 방식이 참 쉬웠다. 고민도 결정도 온전히 교장의 몫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종종 의견을 내기만 했었다. 학생? 학생들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로 비유하자면 당시에는 그저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낡아버린 기숙사지만 그때는 4명이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도 당시에는 인기 절정이었다. 기숙사가 없어서 1, 2시간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고, 어떤 학생들은 학업을 중도 포기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이 정도면 되었지 도대체 얼마나 학생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건지 말이다.


“분수를 알아야지”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다. 문득 당시 교장선생님의 기숙사 개관 축사가 겹쳐서 떠오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여러분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까요? 네, 뭐라고요? 없다고요? 틀렸습니다. 있습니다. 신분에는 귀천이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우리가 다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모든 학생이 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학생 간에 성적 차가 나는 것은 여러분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흠.. 전임 교장 선생님은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차이는 있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큰 차이죠. 참, 중요한 건 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다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더 나은 성적을 얻으려고 노력할 거잖아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아주 좋아하는 비유는 아니에요. 그냥 이해하기 쉽게 하는 비유죠. 허허.”


교장선생님의 작고 찢어진 눈이 반짝였다.


“저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상류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중간 정도 되는 학생은 중산층,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하층이죠. 왜 이렇게 비유를 하냐고요? 성적대로 사회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죠. 확 와닿는 비유기도 하고요. 너무 이야기가 길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기숙사가 새로 만들어졌는데요. 4인 1실에 침대도 있죠. 바닥이 아니고 침대요. 그럼 이 기숙사 배정을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성적순입니다. 그게 가장 공정한 거죠. 앞으로 시험을 볼 때마다 10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이 기숙사를 배정받게 될 겁니다.”


젊은 교사 시절 교장 선생님의 비유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체적 맥락에서는 수긍이 갔다. 그때는 공부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시절이었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학교의 명예며 학생들의 명예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식으로 배정을 하겠다고 하면 어디 일간지에 가십으로 실릴 내용이다. 민주주의를 실험하겠다는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좋은 기숙사를 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혹 무리하게 그렇게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실현될 리가 없다.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대해 1표씩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학교가 되어있는데 ‘성적순’으로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이에 동의할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학생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식의 기숙사 배정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예전 교장의 선례를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김 교장은 기숙사를 운영하는 친한 동료 교장들에게 조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여러 교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김 교장이 처음 찾아간 동료 교장은 박 비스마르크였다. 그는 교장들 세계에서 냉철하고 추진력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철혈 교장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박 교장님, 잘 지내셨죠?”


“아이코, 김 교장님, 반갑습니다. 요새 기숙사 신축으로 바쁘실 텐데, 제가 오히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박교장은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꼬며 대답을 했다.


“기숙사가 아주 멋집니다.”


김 교장은 감탄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뭘요, 학교가 다 비슷비슷하죠”


말은 그렇지만 목소리에는 자랑이 묻어나 있었다.


“제가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기숙사 배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돼서 직접 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학교는 기숙사 배정을 어떻게 하시는지요?”


“네, 고민이 되죠. 예산이 한 천 억정도 돼서 맘껏 쓸 수 있다면야,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방을 제공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지원이 많기는 하지만요. 저는 기숙사 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다수 학생의 복지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의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요? 어떤 가치인가요?”


“참, 그전에 궁금한 것이 있어요. 선생님 학교는 이미 기숙사가 있잖아요. 그 기숙사 배정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신 것이에요?”


“네, 저희는 지은 지 좀 오래되었는데요. 1등부터 100등까지 기숙사를 먼저 차지하는 방식이에요.”


“그럼 나머지 학생들은요?”


“나머지 학생들은 그냥 못 들어가는 거죠.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실력에서 밀린 것이니까요”


“참 잔인하네요. 공동체라는 것이 그렇게 잔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학교 공동체라는 것이 그렇게 약한 사람을 돌보지 않은 것은 문제인 것 같아요. 다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죠”


김 교장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학교의 가치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도 , 기숙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어요. 선생님 학교처럼 무조건 상위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었고요. 또 반대인 경우도 있었어요”


“반대는 어떤 경우인지요?”


“큰 홀을 하나 만들고 값이 좀 싸지만 완전히 같은 품질의 침대와 책상을 하나씩 사서 모두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생들도 있었지요. 여하튼, 이것 때문에 다들 술렁이고 난리 났었어요. 하지만, 이러다가는 학교가 망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강하게 나섰죠”


“어떻게 하셨는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기숙사 배정을 하는 것은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들의 반발이 클 것이고요. 반대로 똑같이 침대나 책상을 쓰자는 주장은 지금까지 우리 학교 공동체의 가치와 너무 맞지 않아요. 학교는 모름지기 상, 중, 하의 가치를 잘 지키면서 서로 협조하는 것이 옳은 것이죠”


“상중하의 협조에 대해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하는 학생,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진 학생, 공부가 싫어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어느 학교나 있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마치 다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각자에게 각자의 몫이 있는 것이고요. 다만 지나치게 안 좋은 처지에 놓이게 되면 사회에 불만이 많아지고, 우리의 가치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우리가 선의로든 공동체 파괴를 막기 위해서든 이런 학생들의 최소한의 공부할만한 환경을 위해 도와야 합니다. 좀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각각의 위치가 잘 유지되면서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기숙사 배정을 하셨는지요?”


“성적대로, 기숙사에 배정되는 것은 그래도 유지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멀리서 학교를 다니는 일은 없도록 했어요. 4인실 기숙사 옆에 규모는 작지만 10인실 기숙사를 만들었습니다. 돈은 빚을 좀 내기도 했고, 4인실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좀 높이기도 했죠. 고마운 일이 있었는데요,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신축 기숙사를 만드는 데 보탰습니다. 이 덕에 10인실 기숙사가 하나 더 생겨서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더 편해졌습니다. 물론 인테리어나 가구들은 좀 싸구려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10인실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들이 불만이 있지 않을까요? 더 좋은 기숙사 시설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는데 말이죠”


“멀리서 다니는 것보다는 더 좋은 일이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학교 공동체는 서로의 분수를 잘 이해하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각자의 지위와 역할들이 있는 겁니다”


“네,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세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박교장의 말에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분수를 이해한다는 것에는 의문이 들었다. 김 교장의 머리를 갸우뚱하며 학교 정문을 나섰다.


각자의 몫


김 교장이 두 번째 만난 교장은 ‘자유고’의 하이에크였다. 하이에크 교장은 국제 학교인 경제고 교사 출신으로 그의 스승인 아담 스미스의 철학을 이어받아 운영되고 있었다. 아담 스미스 선생은 전 민주고 교장보다 더 경쟁을 주장했던 교사였다. 그는 대부분의 일에 학교 교사나 교장이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학교가 하는 일은 폭력과 다툼, 속임수 등 학교를 교란하는 학생들을 찾아내서 퇴학을 시키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요새 이 학교도 기숙사를 하나 더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호기심에 이 학교를 찾아가게 되었다.


“교장님 안녕하세요. 환한 미소가 늘 행복해 보이십니다”


“안녕하세요. 김 교장님, 자유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 학교 분위기가 어떻던가요?”


“네, 아주 활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들어오다 보니 기숙사가 몇 동 더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두 동인데 말이에요. 기숙사 색깔들도 멋지고 말이죠”


“눈썰미가 있으시네요, 저희가 여러 방법으로 기숙사를 많이 확충했습니다”


“부럽습니다. 교장선생님, 그 노하우를 좀 알려주세요. 등록금을 대폭 올리기라도 하신 것인가요?”


“노하우라고까지 할 건 없고요.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는 등록금 많이 올리는 것 싫어하잖아요. 뭐, 전체적으로 조금 올리기는 했죠. 공부를 좀 못해서 기숙사 배정을 못 받은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더 짓기 위해서 말이죠”


“아, 그래요? 원래 ‘자유고’는 그런 학생들을 내버려 두는 학교 아닌가요?”


“오해십니다. 우리도 최소한의 학생다운 삶을 위해서 도와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16인실이지만 멀리서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죠”


“그럼 나머지 기숙사는 어떻게 마련되었나요?”


“우리 학교 모토가 “노력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입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기숙사도 학생들의 노력과 관계없이 학교에서 지어줄 수는 없는 거예요. 등록금이 너무 올라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상호부조입니다”


“상호부조는 서로서로 돕는 것인데 어떤 방법을 사용하신 건가요?”


“학생들과 학교가 함께 기숙사 건립 기금을 만들어 놓은 후 4인실에서 8인실 기숙사실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기금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4인실에서 8인실까지 배정됩니다. 혹시 성적이 떨어져서 기숙사에 배정 못 받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죠. 미래에 대비하는 겁니다”


“ 저 맨 끝 황금색으로 칠해진 기숙사가 바로 그 기숙사인가요?”


“아니요. 말씀드린 기숙사는 은색이고요. 저 황금색 기숙사는 1인실 기숙사예요. 책상도 의자도 고급입니다”


“저 기숙사에는 어떤 학생들이 들어가나요?”


“저 기숙사는 민간 업체에서 만든 기숙사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원하는 부자 학생들이 머무는 기숙사입니다. 물론 돈은 그 학생들의 부모님이 직접 냅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입니다.”


“운영하시면서 별 문제는 없으신가요?”


“네, 우리 학교의 철학에 맞는 방식이에요. 다만 16인실 기숙사 학생들이 좀 안됐기는 한데요. 이렇게 시스템을 유지해야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고 이게 학교 발전을 위해서 최선이죠”


“네,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제가 시간을 너무 뺏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세요. 자유와 활기, 개방의 ‘자유고’니까요”


김 교장은 ‘자유고’를 나서면서 수업이 끝나고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김 교장은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가는 각 학생들의 표정과 복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밝고 활기차고 즐거워 보이는 학생들은 주로 1인실 기숙사로 들어가는 학생들이었다.


모두에게 2인실 기숙사를


다음날, 김 교장은 ‘휘바 휘바’ 학교의 최이케아 교장을 만났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휘바 휘바 뜻은 뭔가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하얗고 긴 수염을 가진 최 교장선생님이 대답을 했다.


“휘바 휘바는 핀란드어로 ‘참 잘했어요”라는 뜻입니다. 우리 학교는 서로 칭찬할 일이 있을 때 외칩니다. 휘바 휘바”


교장 선생님은 갑자기 이상한 러시아 춤 같은 것을 추었다. 다소 흥분한 것 같아 진정시키고자 재빨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선생님, 춤 잘 보았습니다. 아주 흥이 넘치시네요. 이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2인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처음 우리 학교도 가난한 학생들에게 열악한 기숙사 시설을 제공하는 정도를 목표로 신축 기숙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도 선생님 학교처럼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학교잖아요. 전교 학생회장단으로 학생들 간 평등을 강조하는 친구들이 당선된 거예요. 그리고 이 친구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기숙사를’이라는 구호를 가지고 학생과 교사들을 설득한 거죠.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하시죠? 저한테 이야기 듣는 것보다 학생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제가 교장실로 오라고 했으니까 곧 올 거예요”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2분 정도 기다리니, 전교 학생회장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전교 학생회장 박사민입니다”


다부진 체격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학생이 인사를 했다.


“네, 반갑습니다. 박사민 학생. 기숙사 배정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여쭈어 보려고 교장 선생님께 물어보았더니, 학생이 더 잘 알 거라고 하시네요. 이 학교의 배정 방식은 어떤 방법으로 결정이 되나요?”


“제가 처음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처음에는 소득이 높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올려 기숙사 밖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지으려는 계획을 했었어요. 그런데, 다른 학교의 사례를 보니까, 등록금 납부 저항 운동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다른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우리가 돈을 내어야 하냐는 거죠, 착한 마음이 계속 지속되기는 힘든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장단의 의논 끝에 전교생들에게 담대한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담대한 제안인가요?”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고 대신에 모든 학생들이 2인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숙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고치자고 제안했습니다. 학생회는 그렇게 해야 등록금을 더 많이 내는 학생들도 혜택을 받으니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에 복지의 수준을 올리고 대부분이 동일한 혜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 저희들의 제안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반발이 많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학생들은 전학 가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하고, 등록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다수의 학생들은 그 혜택이 본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에 반신반의했습니다. 저희는 우리 모두 성적이 어떻게 될지, 집안 형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니까 결국 모두가 안심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럼 딱 3년만 해보고 안되면 바꾸자고 말해서 새로운 배정방식으로 기숙사를 운영했습니다”


“네, 어떤 방식으로 하셨는지 이해가 되네요. 지금 학생들은 만족하나요?”


“전국 학교 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현재 우리 학교의 만족도가 항상 상위권을 달리고 있습니다. 돈은 많이 내지만 괜찮은 기숙사에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하니 오히려 학업능률도 오르고 행복감도 증가한다고 다들 좋아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박사민 학생, 잘 이해했습니다. 휘바 휘바 고등학교의 학생회와 학생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수업하러 가보겠습니다”


“김 교장님, 어떻게 설명은 잘 들으셨는지요? 혹 더 궁금한 것은 없으세요?”


“네, 설명은 충분히 잘 들었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2인실 기숙사를 운영하려면 아무래도 전기세도, 냉난방비도, 유지비도 더 많이 들 것 같습니다. 현재 걷는 등록금으로 충분하신지 솔직히 궁금합니다”


“네,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현재는 우리나라가 경제가 좋고 부모님들의 벌이도 좋아서 등록금 납부가 많긴 해도 잘 유지가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게 계속 가능할지는 좀 지켜보긴 해야죠. 좋은 지적이세요”


“그래도 저희 민주 고의 입장에서 보자면, 학생들 다수의 평등과 행복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칭찬드리고 싶네요. 휘바 휘바”


“허허, 김 교장님, 응용력 최고입니다. 선생님 학교도 우선순위를 잘 정하셔서 좋은 제도 만드시길 바랍니다”


“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같은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 교장은 교장실 입구를 나와 운동장으로 향했다. 체육시간에 학생들이 한껏 웃으며 “휘바 휘바”을 외치고 아까 교장 선생님이 추던 그 춤을 깔깔거리며 추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만 추던 춤이 아니었던 것이다. 행복의 표현인 것 같았다. 그 행복감이 체육시간 끝날 때 끝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모든 수업에도 이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동창, 박 복지 교수를 만나다.


김 교장은 학교 문제를 억지로라도 잊고자 고등학교 동창 박 복지 교수를 만났다. 박 복지 교수로 말하자면 김 교장에게는 데미안 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 덕에 알의 세계를 깨고 더 나은 고민들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오늘 그 친구랑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학교라는 세계의 알은 묻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김 교장은 그 문제에 너무 천착했는지, 결국 박교수에게 기숙사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가 다녀 갔던 세 군대의 학교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어떤가 친구, 자네는 이 세 학교 모델 중 어떤 모델이 우리 학교에 적합하다 생각하나?”


박 복지 교수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한 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무겁게 떼어 놓았다.


“아주 흥미롭네, 전공자로서 자네가 방문한 학교들이 복지국가의 세 가지 세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좀 놀랍기도 하네. 내가 복지 국가의 이야기를 해 주면, 혹 자네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 구체적 상황에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종종 큰 그림 속에서 해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숲 속에 들어가서 길을 찾을 수도 있지만, 먼 저 큰 산을 멀리서 바라보고 길을 예측할 수도 있으니까 말일세”


“나야, 자네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좋지. 그럼 한 번 시작해 보게”


아래는 친구가 해 준 복지 관련 이야기를 요약정리해 본 것이다.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적자니 그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이 많아서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박교수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복지국가의 시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가 복지 국가가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GDP 성장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먹고살기 힘들 때는 복지국가를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고, 조금씩 먹고살만한 여유가 생기게 되면 복지국가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GDP 3만 달러인 우리나라가 GDP 5만 달러인 스웨덴의 복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며 조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 것이다.


하지만, GDP가 높아도 복지 혜택이 잘 되지 않는 나라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므로 복지 국가가 어떤 한 가지 경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박교수는 오히려 복지국가가 각 국가의 전통, 문화,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3가지 국가의 예를 들고 또 이를 김 교장이 방문한 세 학교와도 연관 지어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우선 박교수가 예를 든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유럽의 많은 대륙 국가들을 대표한다. 박교수는 독일의 복지국가를 ‘조합주의 복지국가’ 또는 ‘보수주의 복지국가’라고 불렀다. 조합은 유럽 사회에서는 길드 같은 특정 직업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을 말한다. 유럽 사회는 중세부터 공동체의 전통이 유지되어 왔다. 남성은 일을 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가족의 전통, 길드 등에서 유래된 직업군을 보호하는 전통, 마을과 교회를 중심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전통, 더 크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국가가 국민들을 보호하는 전통이다. 이들에게 복지라는 것은, 사회에서 도태되는 사람이 없도록 가족이나 교회, 조합이나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독일의 수상인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들이 산업 재해 때문에 다치게 되었을 때 도와주는 사회보험법을 만들었다. 우리가 아픈 것을 대비해서 보험회사에 평소에 돈을 냈다가 나중에 아플 때 도움을 얻는 것을 민간 보험이라고 한다. 사회보험은 노동자들도 기금을 내지만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보장해주므로 사회보험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보험이 자본주의 선진국이 아닌 영국이 아니고 후발주자인 독일에서 시작된 것은 이유가 있다. 당시 공산주의나 시장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세력들 모두 기존의 국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고 보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복지를 베풀어주고 노동자들이 국가에 충성을 다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독일 주변 국가의 복지 정책도 이와 유사하다. 독일 주변 국가들의 경우 공무원 연금 등에 더 많은 혜택을 주었는데, 이는 공무원들의 충성심을 통해 정부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고자 함이었고, 조합의 경우도 다양한 조합들이 돈을 모아 조합 내에서 서로 도왔는데(상호부조) 조합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도울 수 있는 수준이 다 달랐다. 즉 보수주의 복지국가는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복지국가 정책을 19세기부터 적극적으로 준비했지만 그 목적은 사회의 전통적 지위관계를 더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복지국가였다. 현대 독일의 경우 여성이 집에서 쉬는 경우 양육수당이 나온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아야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니, 이는 남자는 직장, 여자는 가정이라는 기존의 가족적 전통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문한 고등학교가 각각의 다른 기숙사를 제공하여 기존의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학생들 모델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은 이 복지국가 모델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박교수가 두 번째로 예를 든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의 복지모델을 ‘자유주의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자유’를 강조하는 복지 모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고, 또 다른 자유로운 개인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는 것들을 말한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한 극렬한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개인이 비참하게 사는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게으름 같은 것으로 돌리고, 그 결과도 그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상사가 들인 밀, 하이에크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삶이 불운의 요소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서 비참한 사람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너무 비참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만 도와주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우리는 공적부조 또는 공공부조라고 부른다. 부조라는 것은 함께 도와준다는 것을 말하는 데, 우리가 내는 세금인 공공의 돈을 모아 이 가난한 사람들만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대공황 등 경제의 급격한 하락 속에서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즉 도와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자유주의’ 복지에서도 ‘사회보험’과 ‘민간보험’을 병행하는 체제를 만들게 된다. 보험은 시민이나 노동자 스스로 위험에 대비해서 자유롭게 돈을 내고, 자신의 노력에 연동되어서 혜택을 받는 것이므로 자유주의 이상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자유주의’ 국가는 사회보험 중심으로 선택하거나, 민간보험에 정부의 재정을 투입하거나, 사회보험과 민간보험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거나 하는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기초 생활 수급 등 정부의 도움에 의존하는 낙인찍힌 하류층, 사회 보험에 주로 의존하는 중류층, 여유 돈을 가지고 민간 보험까지 구입하여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상류층으로 구분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박교수에 의하면 두 번째 방문한 ‘자유고’는 이 복지 모델과 관련이 깊은 기숙사 정책을 쓰는 것으로 분석했다. 자유고의 기숙사 정책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세 그룹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박교수는 북유럽 모델이라 불리는 ‘사회주의 복지국가’ 또는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회주의는 다수 시민이 동등한 평등을 누릴 것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시작은 공산주의다. 공산주의는 투쟁에 의한 역사 발전의 원칙을 믿는다. 도전과 응전을 통해 역사가 발전하고 최종적으로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일으켜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생각을 포기했다. 이들은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평등의 방법을 택했다. 즉, 정당을 만들어 정권을 잡고, 정당한 권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평등할 수 있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사회 민주주의자들 줄여서 사민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사민주의 정당들은 처음에는 한 두 지역부터 평등하고 이상적인 노동자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확산시키는 정책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 편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다 보니 가난한 노동자와 착취하는 자본가의 구도가 깨지고 그 중간에 먹고살만한 중산층이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세금에 의한 복지의 대상을 낙오된 사람들에게만 한정하게 되니 세금을 내는 중산층과 상류층의 반발이 이어지고, 이것은 정권 유지에도 적신호가 되었다. 결국 북유럽의 사민당 정권은 세금은 많이 걷되 그 복지의 수준을 중산층까지 보편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국가를 설계했다. 처음에는 반발이 많았지만 막상 복지의 혜택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삶의 기본적 문제들에서 해방되자 가장 만족도가 높은 복지국가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북유럽의 모델은 남녀의 동등한 자아실현을 위해 사회 서비스의 종류가 많고 질이 높아졌다. 독일이 육아수당을 통해 여성을 가정에 머무르게 한다면, 북유럽은 육아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함으로써 여성이 가정에서 해방되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여성이 노동을 선택하고 은퇴 후 연금을 받는 것이, 가정에 머무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리한 구조다. 박교수는 ‘휘바 휘바’ 고등학교가 그런 방식으로 기숙사를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휘바 휘바 고등학교는 비싼 등록금을 선택했지만, 대신 2인실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유형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주말, 아무도 학교 건물에 없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보충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쉴 것이다. 김 교장은 혼자 교장실에 앉아 그간 조언을 들을 내용들을 머릿속에 정리해보고 있다. 먼저 어떤 복지 국가 모델이 더 좋은 모델인가 생각해 보았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사상들에서 기본 원리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현실의 삶에서는 도무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살고, 공동체를 안에서 의미를 찾고, 공동체의 보호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모델은 자유주의 모델보다 더 인간적인 것 같다. 자유주의 모델은 이기심이라는 본성에 솔직한 모델이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본성일진대, 복지라는 이상을 위해 국가가 세금을 많이 걷어간다는 것은 도무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자선을 통해서 그 사람을 돕고, 나머지 사람들은 공동으로 돈을 출자하고 위험에 대비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활력 넘치게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복지 모델은 근대 사회의 가장 반짝이는 이상인 평등을 실현하는 모델이다. 모든 사람들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탈상품화를 통해 인간답게 사는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비용의 과다 문제는 고민거리지만 말이다.


학교의 기숙사 문제는 이런 기준들에 비추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각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지향이 다르듯이 각 학교가 가지고 있는 교육 철학과 문화가 다르다. 경쟁을 통해 활력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일까? 경쟁을 완화시켜 서로 배려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좋을까? 특히 다른 학교와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결국 그 학교의 철학과 문화가, 즉 그 학교의 오랜 전통과 교사, 학생, 특별히 학생들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할 때 우리 ‘민주고’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일까?


민주고!! 우리 학교는 민주고다. 그래 어쩌면 정답은 민주주의 안에 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가 꽃피운 근대 이전의 복지가 부족했던 것은 국가 권력이 복지를 그저 베풀어주는 시혜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지의 세 가지 모델이 내용이 다르지만 공통점 하나를 찾자면 각각의 민주주의에 대응하여 복지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나 혼자 답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일, 학생들을 소집하고 머리를 맞대고 가장 좋은 방법을 의논해 보아야 하겠다.


keyword
이전 03화시장 자본주의와 비판자들